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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 이후락 又石 李厚洛Lee HuRak

1924 ~ 2009

한국

도예

작가약력

  • 한국의 군인·정치가·도예가

작가 소개

1924년 경상남도 울산군(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나 1942년 울산농업고등학교(현 울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듬해 일본 규슈[九州]의 다치아라이비행학교[大刀洗飛行學校]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았으며, 광복 후 귀국하였다.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교하여 이듬해 3월 소위로 임관하였고, 1951년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 1954년 육군본부 병참감, 1957년 주미대사관 무관, 1959년 국방부 기관장 등을 지낸 뒤 1961년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5·16군사정변 직후 민간인 신분으로 쿠데타 세력에 가담하여 제갈량과 조조를 합친 제갈조조(諸葛曹操)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술책으로 박정희 정권의 책사(策士) 역할을 하였다.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을 거쳐 1963년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비서실장이 되었고, 1969년 10월 주일(駐日) 대사에 임명되었으며, 1970년 12월에는 제6대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취임하여 유신정권의 2인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1973년 박정희의 후계 문제를 거론한 이른바 '윤필용 사건'과 박정희의 정적인 김대중 납치사건에 중앙정보부가 개입하였다는 의혹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그해 12월 중앙정보부장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정계에서 물러났다가 1979년 3월 경상남도 울산-울주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0·26사건 이후 신군부 세력에 의하여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재산을 환수당하고 정치활동을 규제받았다.
중앙정보부장 재임중 1972년 5월 밀사로 북한의 평양을 방문하여 당시 주석 김일성과 비밀회담을 하여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또 1973년 해외에서 반정부 활동을 전개하던 김대중(金大中)이 일본 도쿄에서 납치되었는데, 1998년에 공개된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 사건은 '윤필용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그가 박정희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하여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고, 2007년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상 조사에서도 최소한 박정희의 묵시적 승인하에 그가 지시한 일로 밝혀졌다.
부정축재자로 몰렸을 때는 정치자금을 떡에 비유하여 '떡을 만지다 보면 손에 떡고물이 묻게 마련'이라고 재산 형성을 합리화하여 이른바 '떡고물'이 인구에 회자하기도 하였다. 1985년 정치활동 규제에서 풀렸지만 은둔 생활을 하였으며, 2009년 10월 31일 사망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금성충무무공훈장, 청조근정훈장, 1등수교훈장과 미국 동성(銅星)훈장 등을 받았다.
1970년대 말 권좌에서 물러난 후, 경기도 이천에 도평요(島坪窯)를 짓고 직접 도예 활동을 하였다. 지당 박부원에 따르면 이후락의 도자기는 힘이 넘쳐나고 흙의 순수성이 배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고 한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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