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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강 조속 滄江 趙涑Jo Sok

1595 ~ 1668

조선

서화

작가약력

  • 1595(선조 28)∼1668(현종 9). 조선 후기의 서화가.

작가 소개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희온(希溫), 경온(景溫). 호는 창강(滄江), 창추(滄醜), 취추(醉醜), 취옹(醉翁), 취병(醉病). 병조 참판에 추증된 조수륜(趙守倫)의 아들이며, 문인화가 조지운(趙之耘)의 아버지이다. 이조 판서를 지낸 박태상(朴泰尙)의 장인이기도 하다.
광해군대에 부친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후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공을 세웠으나 훈명(勳名: 나라에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던 칭호)을 사퇴하였다. 효종 때 시종(侍從)으로 뽑혔으나 역시 사양하였다. 1627년 덕산 현감에 임명된 이후 장령, 진선(進善)을 역임하고 상의원정(尙衣院正)에 이르렀다. 저서로 『창강일기(滄江日記)』가 있다. 그는 풍채가 맑고 깨끗하였을 뿐 아니라 지조가 높고, 또한 청빈하여 칭송받았다. 때로는 끼니를 걸러야 하는 가난함에도 구애치 않았으며, 고금의 명화와 명필을 수집, 완상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시서화 삼절(詩書畵三絶)로 일컬어졌다. 그림은 매(梅), 죽(竹), 산수와 더불어 수묵 화조(水墨花鳥)를 잘 그렸다. 특히 까치나 수금(水禽) 등을 소재로 한 수묵화조화에서 한국적 화풍을 이룩하여 조선 중기 이 분야의 대표적 화가로 꼽힌다. 명대(明代)의 화조화가(花鳥畵家)인 임량(林良)의 영향을 받았다. 성기고 까칠한 붓질과 도안적인 형태들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는 한국 특유의 정취 짙은 서정 세계와 상통되는 것이다. 이러한 화풍은 그의 아들인 조지운을 비롯하여 전충효(全忠孝), 이함(李涵), 이하영(李夏英) 등에게로 이어졌다.
그의 대표작인 공필(工筆)의 「금궤도(金櫃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신라의 김씨 시조인 김알지(金閼智) 설화를 회화로 만든 독특한 작품이다. 이 그림의 도식적인 산수표현은 화보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진채의 청록채색은 진경산수화풍의 선구로서 언급된다. 그림 상단에 적힌 어제(御製)의 의미와 제작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인조의 어제가 내린 것은 1636년이었지만 그림을 그린 시기는 1656년경으로 나타난다. 병자호란의 발발로 인해 이러한 시간차가 나타난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1656년을 즈음하여 조속은 심한 눈의 질환을 앓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조속의 산수화는 안견파 화풍, 절파화풍, 남종문인화풍, 실경사생 등 다양한 경향을 보여준다. 「호촌연의도(湖村煙疑圖)」는 남종화풍이 깃들어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미법(米法)을 기조로 하여 다루어진 「호촌연의도」는 조선시대 남종화(南宗畵) 발전의 초기 단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역대 명필들의 글씨에도 관심을 보여 그 진적(眞蹟)과 금석문(金石文)의 수집 활동을 시작한 이 방면의 선구자로도 꼽힌다. 그가 만든 『금석청완(金石淸玩)』이라는 서첩은 신라의 비석에서 안평대군, 한호, 백광훈 등 조선의 명필에 이르기까지 87인의 글씨를 모아 4개의 첩으로 만든 것이었다.
대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노수서작도(老樹棲鵲圖)」와 「매도」, 간송미술관 소장의 「고매서작도(古梅瑞鵲圖)」 등이 있다.
광주(廣州)의 수곡서원(秀谷書院), 과천의 호계서원(虎溪書院), 서천의 건암서원(建巖書院), 김제의 백석사(白石祠)에 제향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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