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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 황용하 美山 黃庸河Hwang YongHa

1899 ~ ?

근대

서화

작가약력

  • 1899∼?, 서화가.

작가 소개

개성출신의 황씨 4형제 서화가(종하(宗河), 성하(成河), 경하(敬河), 용하(庸河)) 가운데 막내로 사군자에 뛰어났다. 형제들과 함께 송도서화연구회(松都書畵硏究會)를 운영하였으며 ‘황씨사형제전’을 수차례 개최하였다. 황용하는 사군자 그림 중에서도 특히 국화로 유명하였다.
1899년 6월 16일(음력) 개성에서 벽암(碧巖)황석일(黃錫一, 1849∼1903)과 설성(雪城) 김씨(金氏)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호(號)는 미산(美山), 등운(騰雲)이며, 자(字)는 윤중(允中)이다. 어려서 형제들과 함께 10여 년 동안 사숙을 통해 한학과 고전을 배웠다.
황용하는 8세에 대자(大字)를 쓸 줄 알고 11세에 이미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서 천재라는 칭호를 들었다. 1918년 19세에는 중국에 건너가 3∼4년간 머물렀으며, 1922년 12월 2일 형제들과 함께 고향인 개성의 동본정(東本町) 452번지에 송도서화연구회(松都書畵硏究會)를 열고 학생을 모집하여 서화교육을 실시하였다. 또 12월 개성유지들이 고려미술공업진흥회를 조직하자 형제들이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3년 3월 24일부터 남산 경성미술구락부에서 황종하, 황성하, 황경하와 함께 작품 백여점을 모아 ‘황씨사형제전’을 개최하였고, 1923년 4월 19일과 20일에는 인천 산수정 공회당(公會堂)에서 4형제의 작품전람회와 석상휘호회를 개최하였다.
1924년에는 군산(群山)으로 내려가 형제들과 함께 개복동(開福洞)에 서화연구소(書畵硏究所)를 운영하였고, 1925년에는 황경하와 함께 일본의 도쿄(東京)에 건너가 사무실을 두고 그림을 판매하는 한편 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26년 일본동경화족회관(日本東京華族會館)에서 ‘미산황용하화백서화전(美山黃庸河畵伯書畵展)’을 개최하였다.
1926년 12월에는 황용하가 마산을 통해 귀국하는 것을 기회로 ‘미산환영서화전람회(美山歡迎書畵展覽會)’가 개최되었고 1927년 11월에는 대구에서 ‘황용하화백서화전람회(黃庸河畵伯書畵展覽會)’가 개최되었는데, 이들 전시에는 4형제의 그림이 함께 출품되었다.
1928년과 1929년에는 동경국립박물관에서 주최된 제4회와 제5회 ‘일본서도작진전람회(日本書道作振展覽會)’에 연속으로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해방 후에는 손재형(孫在馨), 이병직(李秉直), 허백련(許百鍊) 등과 더불어 조선서화동연회(朝鮮書畫同硏會)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부터 12회까지 특선과 입선을 여러 차례 했으며,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는 추천작가로 선정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개성에 거주하였던 황용하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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