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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요시 마모루 日吉 守Hiyoshi Mamoru

1885 ~ ?

일본

판화

작가약력

  • 1885~?.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 판화가.

작가 소개

경성공립중학교(京城公立中學校, 현 서울고등학교)는 경성제일, 제이고보와 달리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한국인들에게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가 최고의 학교였지만, 일본인들은 실질적인 최고의 학교는 경성중학교라 생각하여 이곳을 ‘경성 제일’이라고 생각하였다. 훗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가 경기고등보통학교로 바꾼 것도 일본인들이 경성중학교를 무리하게 ‘제일고보’로 바꾸려고 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 한다.
경성공립중학교의 미술 교사는 용산 갈월동에 살던 히요시 마모루(日吉 守, 1885-?)였다. 그는 도쿄 출신으로 도쿄 제1중학교를 거쳐, 1909년 도쿄미술학교 도안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6월 한국으로 와서 경성중학교 도화교사가 되었으며, 경성고등여학교의 교사도 겸하였다. 1915년에는 시정 5년 공진회에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이후 출품을 계속하여 입, 특선을 거듭하였다. 또한 같은 도쿄미술학교 졸업생인 야마다 신이치, 도다 가즈오(遠田 運雄, 1891-1955) 등과 함께 한국에 거주하는 화가 대표로서 수차례 전람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조선미술협회의 결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1923, 1924, 1925년에는 조선총독부직속기관인 조선미술심사위원회의 서기를 맡기도 하였으며, 1930 1931년에는 경성제국대학 예과(豫科)의 강사를 맡기도 하였다.
그는 1909년에 한국에 와서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에 머문 한국 화단의 터줏대감 같은 존재였으며,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인 미술가들의 주축이었던 도쿄미술학교 출신 화가들의 핵심으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그는 품성이 활달하여 취미로 여행을 즐겼으며, 가부키(歌舞伎)와 같은 극을 보는 것(觀劇)도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가 1945년에 쓴 <조선미술의 회고>라는 글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미술가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글이다. 일본으로 귀국한 후에는 부인의 고향인 시즈오카 현 하마마츠 군에서 지냈다고 한다. 히요시 마모루로부터 배운 학생 중에는 일제강점기 후기에 한국 화단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한 와타나베 코조(渡邊浩三, 1898-1980)와 야마쿠치 타케오(山口正男)와 같은 작가들이 있다.
출처/스마트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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