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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복 金昌福Kim ChangBok
1918 ~ 2010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사항
- 오산학교에서 임파 임용련(任波 任用璉, 1901-?), 해농 백남순(海儂 白南舜, 1904-1994) 사사
- 이중섭과 동문수학
- 일본제일미술학원 서양화 수학
- 경력 사항
- 오산학교 미술교사 재직
- 1978, 스웨덴 이민
- 전시 이력
- 1965, 김창복 불화전, 동국대학교
작가 소개
김창복은 1907년 남강 이승훈이 구국인재 양성을 위해 개교한 오산학교에서 임용련·백남순 부부교사로부터 미술수업을 받으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재학 시절 2년 선배인 이중섭과 하숙방을 함께 쓸 정도로 돈독했으며, 졸업 후에는 일본 제국미술학원을 유학했다.
1953년부터 1978년까지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미술교사로 봉직하며 ‘오산미술반’을 지도해 많은 입상자들을 배출했다. 1965년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주최로 개인전 ‘김창복 불화전’을 개최하였고, 이 후 후학을 지도하며 화가와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1978년에 스웨덴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한국 화단과 멀어지게 됐다.
‘오산 미술반’에서 공부한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창복은 불화를 주로 그렸다. 특히 바위 질감을 느끼게 하는 두터운 마티에르(Matiere) 효과를 주기 위해 안료에 톱밥이나 모래를 주로 혼합해 사용했다. 불상을 전통미감으로 조형화해 한국적 미감을 서양화 기법으로 완성도 높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3년부터 1978년까지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미술교사로 봉직하며 ‘오산미술반’을 지도해 많은 입상자들을 배출했다. 1965년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주최로 개인전 ‘김창복 불화전’을 개최하였고, 이 후 후학을 지도하며 화가와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1978년에 스웨덴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한국 화단과 멀어지게 됐다.
‘오산 미술반’에서 공부한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창복은 불화를 주로 그렸다. 특히 바위 질감을 느끼게 하는 두터운 마티에르(Matiere) 효과를 주기 위해 안료에 톱밥이나 모래를 주로 혼합해 사용했다. 불상을 전통미감으로 조형화해 한국적 미감을 서양화 기법으로 완성도 높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금강신문,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