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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휘 스님 大徽DaeHwi Buddhist Monk

1915 ~ 1992

한국

작가약력

작가 소개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한 대휘스님은 1915년(불기 2459년) 음력 1월29일 경북 청도군 각남면 칠성리에서 아버지 철성(鐵城) 이씨 종해(鐘海)와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승채(承埰), 법호는 노노(老老)이다. 10살 때 경북 선산 도리사에서 월헌(月軒) 정광(淨光)선사를 은사로, 석우(石牛)선사를 계사로 사미계를 받아지녔다. 5년 후 영축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서 정진했다. 19세에 중국 절강성 보화산에서 융천(融天)화상에게 구족계를 받고 23세 때 천녕사, 금산사, 오대산 광제묘봉선원 등지에서 정진했다. 24세 때 보화산에서 보살계를 수지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 인도 성지순례를 하고 일본 교토 만복선원에서 머물기도 했다. 인도와 일본에서 국외 문물을 접한 스님은 한국에 돌아와서는 선산 수도사, 문경 대승선원, 부산 선암사에서 정진했다. 31세 때 제천 송학산 강천사를, 41세 때 김해 육주사를 창건했다. 그후 김해 은하사 주지(41세), 밀양 표충사 주지(41~42세), 중앙종회 부의장(42세)을 역임했다. 종단의 소임을 맡으면서도 정진열기를 불태운 스님은 설악산 봉정암, 문경 김룡사 금선대, 단양 원통사, 청암 수도암 등지에서 안거정진했다.
46세 되던 해 통도사 주지를, 48세 때엔 밀양 홍제중학교 이사장을, 51세때인 1966년부터 5년간 부산 원효학원 이사장을 맡았다. 58세 때는 의성 고운사 주지를 역임하고 63세 때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됐으며 불교중앙회 부의장과 선학원 이사장을 맡았다.
1992년 9월20일 육주사에서 입적했다. 다비 후 사리 5과를 수습, 통도사, 육주사, 강천사에 나누어 봉안했다. 육주사(현 육주선원)에 ‘대한불교조계종 원로 대휘선사 비’가 있다. 불기 2542년(서기 1998년) 현엽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 세운 이 비의 비문은 덕민스님이 짓고 서예가 우재(愚齋) 박영대가 썼다.
출처/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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