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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계 박종훈 荳溪 朴宗薰Park JongHun
1773 ~ 1841
조선
작가약력
- 1773(영조 49)∼1841(헌종 7). 조선 후기의 문신.
작가 소개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순가(舜可), 호는 두계(荳溪). 할아버지는 사득(師得)이고, 아버지는 군수 참원(參源)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우의정 사관(思觀)의 딸이다.
1798년(정조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802년(순조 2)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 홍문관의 부교리(副校理)·응교(應敎),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등을 거쳐 1807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승지·대사성을 역임하였다.
1809년 함경도감영 관하의 민가 1,798호가 화재를 당하자 승지로서 함흥부위유사(咸興府慰諭使)가 되어 피해민을 위유하고 돌아온 뒤, 대사성·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경기관찰사·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대사헌, 규장각직제학(奎章閣直提學)·한성부좌윤·전라도관찰사·예문관제학·이조참판·우부빈객(右副賓客)·홍문관제학·우빈객(右賓客) 등을 역임하였다.
1823년 진하정사(進賀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예문관·규장각·홍문관의 제학 및 육조의 판서와 한성부판윤·대사헌·우빈객·좌빈객·겸유선(兼諭善)·광주목사·평안도관찰사·판의금부사·좌참찬 등을 거쳐 1834년 우의정에 올랐다.
같은 해 순조가 죽자 행장(行狀)을 지었고, 이어 고부정사 겸 주청사(告訃正使兼奏請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7년『순조실록』의 편찬을 위한 실록청총재관(實錄廳摠裁官)이 되고, 좌의정에 올랐다가 이듬해에 풍양 조씨 세도의 압력으로 사직,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경서를 연구해 박학다문했고, 예악(禮樂)·율령·산수에도 능통하였다. 또한 서도와 시문도 뛰어났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사례찬요(四禮纂要)』, 편서로는『반남박씨세보(潘南朴氏世譜)』가 있다.
1798년(정조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802년(순조 2)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 홍문관의 부교리(副校理)·응교(應敎),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등을 거쳐 1807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승지·대사성을 역임하였다.
1809년 함경도감영 관하의 민가 1,798호가 화재를 당하자 승지로서 함흥부위유사(咸興府慰諭使)가 되어 피해민을 위유하고 돌아온 뒤, 대사성·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경기관찰사·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대사헌, 규장각직제학(奎章閣直提學)·한성부좌윤·전라도관찰사·예문관제학·이조참판·우부빈객(右副賓客)·홍문관제학·우빈객(右賓客) 등을 역임하였다.
1823년 진하정사(進賀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예문관·규장각·홍문관의 제학 및 육조의 판서와 한성부판윤·대사헌·우빈객·좌빈객·겸유선(兼諭善)·광주목사·평안도관찰사·판의금부사·좌참찬 등을 거쳐 1834년 우의정에 올랐다.
같은 해 순조가 죽자 행장(行狀)을 지었고, 이어 고부정사 겸 주청사(告訃正使兼奏請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7년『순조실록』의 편찬을 위한 실록청총재관(實錄廳摠裁官)이 되고, 좌의정에 올랐다가 이듬해에 풍양 조씨 세도의 압력으로 사직,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경서를 연구해 박학다문했고, 예악(禮樂)·율령·산수에도 능통하였다. 또한 서도와 시문도 뛰어났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사례찬요(四禮纂要)』, 편서로는『반남박씨세보(潘南朴氏世譜)』가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