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검색

작품이미지

황산 고두동 皇山 高斗東Koh DuDong

1903 ~ 1994

한국

시조 시인

작가약력

  • 1903~1994. 근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시조 시인.

작가 소개

본관은 제주(濟州). 호는 춘강(春岡)·황산(皇山)·여황산인(餘蝗山人). 아버지는 고덕조(高德祚)이고 어머니는 조경남(曺敬南)이다.
고두동(高斗東)은 1903년 경상남도 통영시 태평동 336번지에서 출생하여, 1919년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년 뒤에 그만두었다. 1921년 경성부기전수학원(京城簿記專修學院)에서 공부하여 이듬해 수료하였다. 21세 때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의 작품을 애독하면서 시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4년 『동아 일보』에 시 「월야」, 「추천(鞦韆)」 등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이듬해 시조 동인지 『토성(土星)』을 발간하여 5집까지 내는 등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였다. 탁상수, 김기택(金琪澤) 등과 『참새』 동인으로도 활동하였다.
시조 창작을 계속하면서 1931년 양산전매소장(梁山專賣所長)이 되어 1935년까지 근무하였고, 1936년부터는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와 교유하며 시조 창작에 전념하였다. 이후 의성[1936~1939], 김해, 청송의 전매소장을 거쳐 1945년 부산전매청장에 임명되었으며, 1948년 약 20년간 몸담았던 공직에서 물러났다. 195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 전문지인 『시조 연구(時調硏究)』를 창간하였다.
고두동은 시조 창작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1950년대 말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데 앞장섰고, 부산향토문화연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고대사 분야에서도 주목을 끄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시조 부흥에 관련된 논평을 여럿 발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필, 시사 논평, 서화·수석·분재 등에 관한 글도 썼다. 1962년에는 『황산 시조집』을 간행하였다.
고두동은 시조라는 짧고 정형화된 틀에 동양적인 정서로 자연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문고의 고적한 울림을 통하여 인간의 내면적인 한을 노래한 「현금 산조」는 고두동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문인 활동도 활발히 하여 『시조 문학』 심사위원, 1962년 예총문인협회 부산지부 부지부장[1963년 한국문인협회 부산지부로 개칭], 한국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2년 6월에는 이태극, 양상경, 조종현 등과 한국시조시인협회를 만들어 부회장과 고문을 역임하였다. 또 한국고대사학회 부산지부장, 한국국악협회 부산지부 고문, 부산서도연합회 고문도 맡았다.
『황산 시조집』[1963]을 비롯하여 『부산의 산명·지명 해고』[1971], 『황산 문선』[1983] 등이 있다. 논문 및 단평으로는 「시조작 소고」[『시조 연구』, 1953], 「현대 감각의 민족시로 시조 부흥에 대한 사견」[『동아 일보』, 1955. 9. 8], 「김삿갓과 그의 시」[『현대 문학』, 1957. 1], 「시조 시단의 현황」[『동아 일보』, 1957. 4. 3~4. 4), 「시조 시단 현황과 진로」[『시조 문학』4, 1962] 등이 있다.
1968년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87년 제3회 육당 시조상[창작 부문]을 수상하였다.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3가 대신 공원과 금정구 청룡동 546번지 범어사 문화의 거리에 고두동 시비가 있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작가의 경매 작품

제3회 I Contact 온라인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