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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윤종의 淵齋 尹宗儀Yun JongUi

1805 ~ 1886

조선

작가약력

  • 1805(순조 5)∼1886(고종 2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작가 소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연(士淵), 호는 연재(淵齋). 찬성 임(任)의 후손으로 식(埴)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광산김씨(光山金氏)로 도사 재도(在度)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해 6세 때 증조모 김씨가 천자문과 당시(唐詩)를 가르쳤는데, 즉시 암송했다고 한다. 18세 때 생원시에 합격해 1852년(철종 3) 서부도사가 되었다. 1855년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를 거쳐 장악원(掌樂院)으로 옮겼다가, 효릉령(孝陵令)·문의현령을 지내고 어머니 상을 당해 귀향하였다.
1862년 삼남에 민란이 일어나자 임금에게 구폐(捄弊)의 방책을 아뢰고, 장서원별제(掌署院別提)·김포군수를 지냈다. 1864년(고종 1) 대흥군수(大興郡守), 1867년 청풍군수·강릉부사, 1870년 옥구현령 등 지방관이 되어 가는 곳마다 선치(善治)하여, 비석이 세워졌다.
1875년에 공조참의·오위장·돈녕부도정 등을 역임하였다. 1882년 돈녕부사로 파광군(坡光君)에 습봉(襲封)되고 이어 호조참판을 지냈다. 공조판서·도총관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884년 80세가 되자 정헌대부(正憲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효성이 지극해 간병할 때 1년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병(兵)·농(農)·율력(律曆)·도상(圖象) 등도 깊이 연구했으나, 경전에 더욱 밝았으며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철종이 즉위하자 헌종의 부묘(祔廟) 등의 문제를 고금의 예전(禮典)을 참고해 『방례고증(邦禮考證)』 2권을 저술하였다.
그 밖에 「상서도전변해(尙書圖傳辨解)」·「사서의의답문수록(四書疑義答問隨錄)」·「예기사문록(禮記思問錄)」·「예람명의고(禮覽名義攷)」·「상례분류(喪禮分類)」·「거안록(居安錄)」·「증자정문부주(曾子正文附註)」·「고사통휘(古史統彙)」·「을사소장록(乙巳消長錄)」·「가국동휴표(家國同休表)」·「율력의난(律曆疑難)」·「유사소전(游史小箋)」 등과 약간의 문집이 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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