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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주부 김용환 金龍煥Kim YongHwan
1911 ~ 1998
한국
만화
작가약력
- 1911~1998. 만화가. 별칭 코주부.
작가 소개
코주부 김용환(金龍煥, 1911~1998, 호 목정(木丁))은 1938년 도꾜미술학교를 졸업했으며, 일찍이 일본의 소년잡지 《소년구락부(少年俱樂部)》 등에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펜화’는 당시 일본 제일의 ‘가바시마(樺島勝一) 펜화’를 따를 만큼 잘 그렸다는 평판이었다고 한다. 《학원》에도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등 여러 작품을 펜화로 그렸다. 일본에서 최고의 삽화가로 명성을 떨치다 해방 직전 한국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렸다. 해방 후 우리나라 만화계에서는 아무도 그와 견줄 수 없을 만큼 그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1945년 창간된 <서울타임즈>와 <중앙신문> 등에서 시사만평과 <코주부>를 게재했고, 단행본과 잡지 등을 통해 만화를 대중화시켰다.
펜화에 있어서는 지금도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바우 김성환,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홍길동> 감독 신동헌, 만화 및 캐리커쳐의 달인 박기정 등 한국 만화의 1세대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 존재였다. 너무 뛰어난 재능 탓에 6.25 당시 남북한 정권이 코주부 쟁탈전을 벌였고 그 결과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1950년대 돈을 가장 잘 버는 예술인이기도 했다. 1959년 일본으로 건너가 98년 미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코주부는 김용환의 시사만화로 광복 직후 대표적인 신문 연재 만화의 하나이다. 주먹만한 코에 팔(八)자 수염을 기르고 중절모를 걸친 땅딸한 키, 건장한 체구의 호탕스런 중년신사 모습의 주인공 코주부는 항상 타인으로부터 손해나 망신만 당하는 순박하고 선량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원래 「코주부」 연재는 1940년 경 일본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재일 한국인들을 선도, 계몽하기 위해 창간된 B4판 5면의 주간지 『동경조선민보(東京朝鮮民報)』에 처음 등장해서 활약하다가, 작가가 귀국함에 따라 국내 신문과 잡지에 실리기 시작하였다.
광복 후 B4판 2면으로 발행된 첫 영자일간지 『서울타임즈(TheSeoulTimes)』에 창간호부터 2면에 가로 네 칸으로 게재하였으며, 제목은 영어로 ‘KOCHUBU’라고 표기하였다.
내용은 정치·경제·사회 분야 등의 비판이나 시사풍자보다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명랑하고 유머스러운 난센스를 주로 한 순수만화였으며, 대사는 영문으로 표기하였다.
1946년 말에 중단되었는데, 영자지의 특수성 때문에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못하여 그리 큰 인기를 모으지는 못하였다. 그 후 1949년 9월 15일 창간된 최초의 만화잡지 『만화행진(漫畫行進)』에 창간호부터 연재되었다.
1952년 6월 17일부터 10월 6일까지는 『서울신문』에 106회 연재되었고, 1953년 8월 15일에 창간된 영자지 『코리안 리퍼블릭(TheKoreanRepublic)』에 창간호부터 매일 3면에 연재되어 1959년 12월 31일까지 약 6년 4개월 동안 게재되었다.
가로 세 칸짜리 형식의 이 만화는 역시 제목을 영문으로 달았는데, 작품 속에 대사가 없는 팬터마임의 순수 유머만화였다. 그 뒤 1956년 3월 7일부터 6월 8일까지 『평화신문(平和新聞)』의 3면에 90회가 실렸고, 1964년 7월 27일부터 9월까지 『서울신문』 8면에 잠깐 연재된 뒤 국내 신문에는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펜화에 있어서는 지금도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바우 김성환,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홍길동> 감독 신동헌, 만화 및 캐리커쳐의 달인 박기정 등 한국 만화의 1세대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 존재였다. 너무 뛰어난 재능 탓에 6.25 당시 남북한 정권이 코주부 쟁탈전을 벌였고 그 결과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1950년대 돈을 가장 잘 버는 예술인이기도 했다. 1959년 일본으로 건너가 98년 미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코주부는 김용환의 시사만화로 광복 직후 대표적인 신문 연재 만화의 하나이다. 주먹만한 코에 팔(八)자 수염을 기르고 중절모를 걸친 땅딸한 키, 건장한 체구의 호탕스런 중년신사 모습의 주인공 코주부는 항상 타인으로부터 손해나 망신만 당하는 순박하고 선량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원래 「코주부」 연재는 1940년 경 일본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재일 한국인들을 선도, 계몽하기 위해 창간된 B4판 5면의 주간지 『동경조선민보(東京朝鮮民報)』에 처음 등장해서 활약하다가, 작가가 귀국함에 따라 국내 신문과 잡지에 실리기 시작하였다.
광복 후 B4판 2면으로 발행된 첫 영자일간지 『서울타임즈(TheSeoulTimes)』에 창간호부터 2면에 가로 네 칸으로 게재하였으며, 제목은 영어로 ‘KOCHUBU’라고 표기하였다.
내용은 정치·경제·사회 분야 등의 비판이나 시사풍자보다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명랑하고 유머스러운 난센스를 주로 한 순수만화였으며, 대사는 영문으로 표기하였다.
1946년 말에 중단되었는데, 영자지의 특수성 때문에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못하여 그리 큰 인기를 모으지는 못하였다. 그 후 1949년 9월 15일 창간된 최초의 만화잡지 『만화행진(漫畫行進)』에 창간호부터 연재되었다.
1952년 6월 17일부터 10월 6일까지는 『서울신문』에 106회 연재되었고, 1953년 8월 15일에 창간된 영자지 『코리안 리퍼블릭(TheKoreanRepublic)』에 창간호부터 매일 3면에 연재되어 1959년 12월 31일까지 약 6년 4개월 동안 게재되었다.
가로 세 칸짜리 형식의 이 만화는 역시 제목을 영문으로 달았는데, 작품 속에 대사가 없는 팬터마임의 순수 유머만화였다. 그 뒤 1956년 3월 7일부터 6월 8일까지 『평화신문(平和新聞)』의 3면에 90회가 실렸고, 1964년 7월 27일부터 9월까지 『서울신문』 8면에 잠깐 연재된 뒤 국내 신문에는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출처/한국잡지백년3, 중앙일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