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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립 김원 一粒 金源Kim Won
1912 ~ 1994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서라벌 예술대학
- 기관 경력
- 한국미술협회 고문
- 1961년-1972년 이천중학교 서라벌고등학교 교사
- 1972년-198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강사
- 1975년-1877년 한국미술협회 이사
- 1981년-1982년 경남대학교 교수
- 1991년-1993년 대구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 등 역임
- 전시
- 1963년-1977년, 백양회 회원전
- 1968년, 종합미술제, 국립중앙공보관
- 1973년-1984년, 제1-10회 창림회 회원전
- 1974년, 개관 기념전, 미술회관
- 1977년-1984년, 아시아 현대미전, 동경 동경도 미술관
- 1977년-1992년, 개인전 (6회)
- 1978년, 제1회 미술단체 초대 연립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9년, 동양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자연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3년, 국전 출신작가전, 미술회관
- 1983년-1991년,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9년, 한일 교류전, 일본
- 1990년, 한국미술-오늘의 상황전, 예술의전당
- 1993년, 문인화 정신의 표출전, 서울 시립미술관
- 1993년, 벨기에 작가 초대전: 한독 미술관협회전, 예술의전당
- 1994년, 서울 국제 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 1994년, 문인화 정신의 탐구전, 서울 시립미술관
- 등 전시
- 수상
- 196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특선
- 1962년-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특선 2회, 입선 11회
작가 소개
본명은 김원진(金源珍). 호는 일립(一粒), 본관은 김해(金海). 평양 출생.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를 거쳐, 1933년일본 도쿄의 데이고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 서양화과로 유학하여 1938년에 졸업했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서 입선을 한 것을 비롯하여, 함흥 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1938∼1944년)까지 해마다 출품을 하여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등으로 8차례 입선하였다. 광복 후 평양으로 돌아와 서문여자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1947년 월남하여 서울에서 정착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미술과에 출강하였다. 6·25 때에는 종군화가 단원으로 「38선」 등을 그렸고, 부산에서 유엔한국경제원호처(UNKRA) 미술고문을 지냈다.
1954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추수」, 「가을」을 비롯하여, 「동해의 전망」(1957년), 「북악산」(1963년), 「한강」(1968년), 「설악산」(1972년), 「겨울 인수봉」, 「설악의 초설」(1979년) 등 대표적 풍경화들을 출품하였다. 1957년에는 추천작가, 1969년 이후에는 초대작가로 해마다 참여하면서 심사위원도 수차례 역임하였다. 작품 경향은 한국의 자연미를 찬미하며 재현하려고 한 서정적 사실주의로 일관하였다. 1963년부터는 사실주의 화가 단체인 목우회(木友會)에 가담하여, 그 연례 회원 작품전에 전국 각지의 현지에서 그린 계절적 자연미와 정취를 그린 향토적 시각의 풍경화를 출품하기도 하였다.
또한 1955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취임하여 1977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산업미술대학원장 겸 제2부 대학장을 역임하였다. 1981년부터는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을 지냈다.
1975년 서울시문화상, 1977년 국민교육훈장, 1981년 문화상, 1986년 3·1문화상 예술 부문, 1992년 예술원장 미술 부문을 수상하였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서 입선을 한 것을 비롯하여, 함흥 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1938∼1944년)까지 해마다 출품을 하여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등으로 8차례 입선하였다. 광복 후 평양으로 돌아와 서문여자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1947년 월남하여 서울에서 정착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미술과에 출강하였다. 6·25 때에는 종군화가 단원으로 「38선」 등을 그렸고, 부산에서 유엔한국경제원호처(UNKRA) 미술고문을 지냈다.
1954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추수」, 「가을」을 비롯하여, 「동해의 전망」(1957년), 「북악산」(1963년), 「한강」(1968년), 「설악산」(1972년), 「겨울 인수봉」, 「설악의 초설」(1979년) 등 대표적 풍경화들을 출품하였다. 1957년에는 추천작가, 1969년 이후에는 초대작가로 해마다 참여하면서 심사위원도 수차례 역임하였다. 작품 경향은 한국의 자연미를 찬미하며 재현하려고 한 서정적 사실주의로 일관하였다. 1963년부터는 사실주의 화가 단체인 목우회(木友會)에 가담하여, 그 연례 회원 작품전에 전국 각지의 현지에서 그린 계절적 자연미와 정취를 그린 향토적 시각의 풍경화를 출품하기도 하였다.
또한 1955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취임하여 1977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산업미술대학원장 겸 제2부 대학장을 역임하였다. 1981년부터는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을 지냈다.
1975년 서울시문화상, 1977년 국민교육훈장, 1981년 문화상, 1986년 3·1문화상 예술 부문, 1992년 예술원장 미술 부문을 수상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