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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 김은호 以堂 金殷鎬Kim EunHo
1892 ~ 1979
한국
한국화
작가약력
- 학력
- 1915년 서화미술회 화과 졸업
- 1917년 서화미술회 서과 졸업
- 일본 동경미술학교 동양화과
- 기관 경력
- 1912년 관비로 서화미술회 입학
- 창덕궁 이왕전하(융희황제)의 어진 착수
- 1918년 서화협회 정회원
- 1919년 서대문형무소 1년 복역(독립신문 배포)
- 1923년 YMCA 벽화 봉사, YMCA
- 1924년 고려미술원 연구회 지도교사
- 1925년 도일, 結城素明의 문하생 및 동경미술학교 청강생
- 1928년 귀국, 순종.태조.세조.원종의 어진 봉사
- 1936년 후소회 창립 회원, 조선미술원 창설
- 1937년 조선 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 및 추천작가(한국작가로서 최초)
- 1956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고문
- 1962년 문예상 미술부문 심사위원
- 등 역임
- 전시
- 1912년, 조선궁실 역대 황제 어진 5위 봉사
- 프랑스공관 미술전
- 김은호 허백련 2인전, 신세계 백화점
- 1953년, 제1회 현대 미술 작가 초대전, 부산 국립박물관
- 1970-1972년, 개인전 (3회)
- 1971년, 동양화 6대가전, 신문회관
- 1972년, 한국 근대미술 6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2년, 동양화 6대가전, 신문회관
- 1973년, 제1회 한국도화전, 신세계 화랑
- 1976년, 한국 현대동양화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7년, 제9회 후소회전, 선 화랑
- 등 전시
- 수상
- 1922년, 조선 미술전람회 4등
- 1926년, 1927년, 일본제국미술전람회 입선
- 동경 동양연미협회 주최 동양회화전 1등
- 1927년, 일본 광풍회전 입상
- 1928년, 동양회화전 1등상
- 1962년, 문화훈장 대통령장
- 1962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 1965년, 3.1문화상 예술상
- 1968년, 제13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 1976년, 5.16 민족문화상
- 저술
- 서화백년, 중앙일보사, 1977년
작가 소개
본관은 상산(商山), 호는 이당(以堂), 다른 이름은 양은(良殷)이다. 1892년 인천에서 출생하였다. 안중식(安中植)·조석진(趙錫晋)을 사사하고, 한말 최후의 어진화가(御眞畵家)를 지냈다.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우에노[上野]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제미전(帝美展) 등에 출품하여 여러 차례 입상하였다.
1937년 친일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 평의원이 되어 같은 해 11월 일본 군국주의에 동조하는 내용의 《금차봉납도(金釵奉納圖)》를 그리는 한편, 1942년부터 2년간 반도총후미술전(半島銃後美術展) 심사위원을 맡아 화필보국(畵筆報國)·회화봉공(繪畵奉公)에 입각한 친일 활동을 하였다. 그밖에 조선남화연맹전(1940), 애국백인일수(愛國百人一首)전람회(1943.1), 조선총독부와 《아사히신문》이 후원한 일만화(日滿華)연합 남종화전람회(1943.7) 등 성전(聖戰) 승리를 위한 국방기금 마련전에도 참여하였다.
8·15광복 후에는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추천작가, 1955년 국전 심사위원을 거쳐 수도여자사범대학(세종대학교)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1920년 후반부터 화실을 개방하여 백윤문(白潤文)·김기창(金基昶)·장우성(張遇聖)·이유태(李惟台)·한유동(韓維東) 등 후진을 길러냄으로써 한국 회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그림은 인물·화조·산수 등 폭넓은 영역을 다루었으나 중심 영역은 무엇보다 인물에 있었다. 선전 1회에 출품한 《미인승무도(美人僧舞圖)》 이래 주로 인물 소재를 다루면서, 종전 스타일과는 다르게 선묘(線描)를 억제하고 서양화법의 명암과 원근을 적용하였다. 단순한 전통 화법의 계승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화를 통해 사생주의(寫生主義)를 흡수하고, 또 양화풍의 화법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인물화 외에 수묵담채(水墨淡彩)의 산수풍경, 문인화(文人畵)에서도 독특한 필력을 발휘하였다.
1962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65년 3·1문화상, 1968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았고,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작품으로는 《승무(僧舞)》《간성(看星)》《향로》《군리도(群鯉圖)》《춘향초상》《충무공 이순신 초상》 등이 있다.
1937년 친일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 평의원이 되어 같은 해 11월 일본 군국주의에 동조하는 내용의 《금차봉납도(金釵奉納圖)》를 그리는 한편, 1942년부터 2년간 반도총후미술전(半島銃後美術展) 심사위원을 맡아 화필보국(畵筆報國)·회화봉공(繪畵奉公)에 입각한 친일 활동을 하였다. 그밖에 조선남화연맹전(1940), 애국백인일수(愛國百人一首)전람회(1943.1), 조선총독부와 《아사히신문》이 후원한 일만화(日滿華)연합 남종화전람회(1943.7) 등 성전(聖戰) 승리를 위한 국방기금 마련전에도 참여하였다.
8·15광복 후에는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추천작가, 1955년 국전 심사위원을 거쳐 수도여자사범대학(세종대학교)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1920년 후반부터 화실을 개방하여 백윤문(白潤文)·김기창(金基昶)·장우성(張遇聖)·이유태(李惟台)·한유동(韓維東) 등 후진을 길러냄으로써 한국 회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그림은 인물·화조·산수 등 폭넓은 영역을 다루었으나 중심 영역은 무엇보다 인물에 있었다. 선전 1회에 출품한 《미인승무도(美人僧舞圖)》 이래 주로 인물 소재를 다루면서, 종전 스타일과는 다르게 선묘(線描)를 억제하고 서양화법의 명암과 원근을 적용하였다. 단순한 전통 화법의 계승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화를 통해 사생주의(寫生主義)를 흡수하고, 또 양화풍의 화법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인물화 외에 수묵담채(水墨淡彩)의 산수풍경, 문인화(文人畵)에서도 독특한 필력을 발휘하였다.
1962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65년 3·1문화상, 1968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았고,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작품으로는 《승무(僧舞)》《간성(看星)》《향로》《군리도(群鯉圖)》《춘향초상》《충무공 이순신 초상》 등이 있다.
출처/미술대사전(인명편), 두산백과,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