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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 김익현 聖淑 金翊顯Kim IkHyeon

1869 ~ 1950

근대

작가약력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작가 소개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성숙(聖淑)이다. 186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광석동에서 태어났다. 묘는 안동시 이천동에 있다.
김익현은 한문을 수학하다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1919년 3월 안동면 만세시위를 계획·주도하였다. 안동면 만세시위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즉 1차는 3월 13일, 2차는 3월 18일, 3차는 3월 23일이었다. 이 가운데 김익현은 2차와 3차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먼저 안동면 2차 만세시위는 계획 단계에서 안동교회와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김익현은 김병우(金炳宇)를 비롯한 김익현(金翊顯)·김계한(金啓漢) 등과 서로 의논하여 3월 18일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철저히 준비하였다.
드디어 3월 18일 장날 낮 12시 삼산동 곡물전(현 신한은행과 농협 안동지부 중간 지점) 앞에서 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고, 이들은 안동시 내 곳곳을 다니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9일 0시 50분 무렵 2,5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 군중은 일제 식민 통치 기관인 군청과 경찰서, 대구지방재판소 등에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다음 장날인 3월 23일에 일어난 안동면 3차 만세시위는 안동군민이 대거 참가하여 오후 7시 30분 시작되었다. 이들은 구속자 구출을 위해 경찰서와 대구지방재판소로 밀고 들어갔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30명이 죽고 5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일로 김익현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 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일 대구복심법원과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83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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