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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향 김영렬 玩香 金英烈Kim YungYul
1923 ~ 2003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1923년, 일본미술대학 서양화과 수료
- 기관 경력
- 1966-1988년, 성 요셉여고 교사
- 강진문화원 이사
- 금서당 대표
- 등 역임
- 전시
- 1953년-1983년, 개인전(세종문화회관) 등 20여회
- 1970년-1991년, 영․호남미술교류전
- 1987년, 동서양미술계 축제(10개국)
- 1990년, 영․호남 원로작가 초대전(부산시민회관)
- 1990년, 아시아현대미술초대전(일본 도쿄)
- 등 전시
- 수상
- 1974년, 한국미협 이상장상
- 1982년, 국제성경서화전 우수상
- 1985년, 한국교육헌장이념구현 표창(문교부장관)
- 1988년, 국민훈장 포상
- 1988년,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상
작가 소개
김영렬은 1923년 강진읍에서 태어나, 해방 직전인 1943년 일본미술학원 서양화과를 수료하고 곧바로 고향 강진으로 돌아와 활동했다. 호는 완향(玩香). 김영렬은 평생 강진의 산하를 그렸다. 강진의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현장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게 강진풍경 그리기였다. 미술도구를 들고 마량 쪽으로 걷다가 미리 점찍어 놓은 곳에서 화필을 손에 들었다고 한다.
김영렬은 1961년부터 금릉여자중학교(현 성 요셉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1988년 정년퇴직하기까지 성 요셉여고에서 후학을 길러내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2003년 11월 간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는 칠량공원묘원에 있다. 군청 뒤편에 있는 금서당 그의 유택에는 그의 유작 1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남도 서양화단의 발아가 김홍식ㆍ오지호ㆍ김환기라면, 남도 서양화단의 형성은 강용운ㆍ양수아ㆍ배동신 등으로 추려지고 이를 기반으로 남도 서양화단이 성장하고 분화된 사례로서 김영렬이 꼽힌다. 서양화단에 대해 지역사회에서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는 형편에서 강진에서 태어나 강진을 그리며 남도에서 서양화단을 꽃피우고 성장시킨 예술가의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영렬은 1961년부터 금릉여자중학교(현 성 요셉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1988년 정년퇴직하기까지 성 요셉여고에서 후학을 길러내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2003년 11월 간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는 칠량공원묘원에 있다. 군청 뒤편에 있는 금서당 그의 유택에는 그의 유작 1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남도 서양화단의 발아가 김홍식ㆍ오지호ㆍ김환기라면, 남도 서양화단의 형성은 강용운ㆍ양수아ㆍ배동신 등으로 추려지고 이를 기반으로 남도 서양화단이 성장하고 분화된 사례로서 김영렬이 꼽힌다. 서양화단에 대해 지역사회에서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는 형편에서 강진에서 태어나 강진을 그리며 남도에서 서양화단을 꽃피우고 성장시킨 예술가의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김달진미술연구소, 강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