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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선 金點善Kim JomSon
1946 ~ 2009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시청각교육학 학사
- 1969년-1969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교육영화전공 중퇴
- 1972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 석사
- 기관 경력
- 1969년-1971년 미국 감리교 한국지부 소속 통역 및 번역사로 근무(이화여대재단 소속)
- 1973년-1975년 여성실험영화모임 ""카이두클럽"" 창립
- 1972년 제8회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
- 1972년, 제8회 파리비엔날레 출품 후보 선정
- 1973년-1975년 실험영화 활동
- 1987년-1988년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미술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 선정
- 전시
- 1972년, 제8회 파리 비엔날레
- 1985년, 앙데팡당전
- 1983년-2007년, 개인전 (60여회)
- 1995년, 한집한그림걸기전, 마루갤러리
- 1997년, 선화랑 개관20주년기념전 제2부 2백인작가 1호전, 선화랑
- 1997년, 현대미술 12인초대전, 예일화랑
- 1998년, 개관기념전, 서종갤러리
- 1998년, 청(靑). 파랑. 블루전, 핸드앤마인드
- 2000년, 정감있는 그림전, 청화랑
- 2002년, 말이 있는 그림전, 인더갤러리
- 2002년, 이석주. 박항율. 김점선 3인전, 갤러리조
- 2004년, 디지털 판화전, 하나아트갤러리
- 2005년, 김점선·이두식전, 가일미술관
- 등 전시
- 수상
- 1987년, 예술평론가협회 올해의 예술가
- 1988년, 예술평론가협회 올해의 예술가
작가 소개
파격적 언행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화가로 유명하며 어떤 미술사조도 따르지 않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였다.
26세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후 1972년 홍익대학교대학원 서양학과에 입학했다. 그 해에 제1회 앙데팡당전에서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되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83년 박여숙 화랑 초대 개인전으로 첫 전시회를 시작한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시회를 열어 모두 60여 회에 걸쳐 개인전을 가졌다. 2002년 오십견으로 인해 붓을 잡지 못했을 때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그림을 그렸다. 3년 여간 디지털 그림을 그리다가 어깨가 완치된 후 2005년 다시 붓을 들면서 디지털 그림과 유화의 만남을 시도했다.
그녀는 어떤 미술사조도 따르지 않고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였다. 구도나 원근법을 무시하고 단순하고 투명한 선과 색채로 오리·말·꽃 등 자연을 표현했다. 어린 아이 작품처럼 서툴게 보이는 그림, 동화적인 작품세계 등의 평가를 받지만,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은 <자유>라고 요약한다. 그녀는 다작 작가이면서 또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그림을 그렸기에 원하는 사람이면 큰 부담 없이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 이는 대중과 나누는 미술이어야 한다는 그녀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자른 짧은 머리에, 사시사철 운동화에 한두 벌의 옷, 거침 없는 솔직한 말투 등 파격적인 언행으로 주위의 시선을 받았다. 그림 그리는 일 외에는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았고, 2007년 난소암 발병 후에도 생애 마지막 시간을 작품활동을 하면서 보냈는데, 이때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그렸다.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그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준비해온 자서전 〈점선뎐〉이 발간되었다.
작품활동 외에도 1998년 〈나, 김점선〉·〈김점선 스타일〉·〈10cm 예술〉 등 여러 편의 책을 썼고, 양희은·장영희·박완서 등 예술인의 책과 음반 등에 삽화를 그렸으며, KBS 텔레비전 〈문화지대〉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1987년과 1988년 예술평론가협회 선정 미술부문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을 연속해서 수상하였다.
26세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후 1972년 홍익대학교대학원 서양학과에 입학했다. 그 해에 제1회 앙데팡당전에서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되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83년 박여숙 화랑 초대 개인전으로 첫 전시회를 시작한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시회를 열어 모두 60여 회에 걸쳐 개인전을 가졌다. 2002년 오십견으로 인해 붓을 잡지 못했을 때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그림을 그렸다. 3년 여간 디지털 그림을 그리다가 어깨가 완치된 후 2005년 다시 붓을 들면서 디지털 그림과 유화의 만남을 시도했다.
그녀는 어떤 미술사조도 따르지 않고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였다. 구도나 원근법을 무시하고 단순하고 투명한 선과 색채로 오리·말·꽃 등 자연을 표현했다. 어린 아이 작품처럼 서툴게 보이는 그림, 동화적인 작품세계 등의 평가를 받지만,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은 <자유>라고 요약한다. 그녀는 다작 작가이면서 또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그림을 그렸기에 원하는 사람이면 큰 부담 없이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 이는 대중과 나누는 미술이어야 한다는 그녀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자른 짧은 머리에, 사시사철 운동화에 한두 벌의 옷, 거침 없는 솔직한 말투 등 파격적인 언행으로 주위의 시선을 받았다. 그림 그리는 일 외에는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았고, 2007년 난소암 발병 후에도 생애 마지막 시간을 작품활동을 하면서 보냈는데, 이때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그렸다.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그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준비해온 자서전 〈점선뎐〉이 발간되었다.
작품활동 외에도 1998년 〈나, 김점선〉·〈김점선 스타일〉·〈10cm 예술〉 등 여러 편의 책을 썼고, 양희은·장영희·박완서 등 예술인의 책과 음반 등에 삽화를 그렸으며, KBS 텔레비전 〈문화지대〉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1987년과 1988년 예술평론가협회 선정 미술부문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을 연속해서 수상하였다.
출처/다음백과,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