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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백기완 民草 白基玩Baek KiWan

1932 ~

한국

작가약력

  • 대한민국의 정치인, 시민사회운동가·통일운동가, 작가.

작가 소개

백기완은 1932년 1월 24일 황해도 은률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황해도 은율 출신. 1946년 황해도 일도초등학교를 졸업했고 해방 이후 월남했다. 백기완은 초등학교 이외의 정규교육과정은 거치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실향민 출신으로 일찍이 통일문제에 눈을 떠서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하였고, 1967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하여 백범 사상 연구와 보급에 힘썼고, 이와 함께 민주화운동에도 뛰어들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청원운동을 펼치다 긴급조치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1975년 9월에는 양일동, 김동길과 함께 장준하 장례식을 주관하고 추도사를 낭독하였다. 이후 1979년에 YM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체포되어, 계엄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징역형을 선고 받아 복역하다가 1981년에 3·1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민족통일 민중운동연합 부의장을 지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 재야 운동권의 일부인 ""제헌의회파"" 그룹의 추대로 독자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대선후보직을 양보하여 군정종식을 위한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의 후보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하였다. 그러나 1987년 9월 김영삼과 김대중은 후보단일화 협상에서 이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 노태우가 3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선거에서 군사정권이 연장되자, 실망한 그는 제도권 정치권과 타협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수야당과 결별하였다. 1992년 독자 민중후보로 재야운동권의 추대를 받아 다시 12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다. 2번의 대선 모두 별도의 정당이 없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특별히 백기완 선거대책 운동본부 약칭 백선본이 구성되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났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뒤엔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났으나 시민사회 운동에는 계속해서 동참하였다.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맡아 재야에서 통일운동과 진보적 노동운동에 힘썼다. 민족문화대학설립위원회 대표, 장준하선생 암살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였고, 1996년 고 장준하선생 21주기추도식 준비 위원회 공동대표에 선출되었다. 1999년 11월 계간잡지 <노나메기>지를 창간하여 발행인이 되었으며 2000년 5월에는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임용되었다.
저서로는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장산곶매 이야기>,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이심이 이야기>, <우리 겨레 위대한 이야기>,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까>, <나도 한때 사랑을 해본 놈 아니요> 등이 있다.
출처/위키백과, 시사상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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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회 여름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