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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 김충현 一中 金忠顯Kim ChungHyun
1921 ~ 2006
한국
서예
작가약력
- 1921~2006. 20세기에 활동하며 한글 서예의 보급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서예가.
- 전시
- 1949년-1980 년, 제1-2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립현대미술관
- 1954년·1983년, 개인전 (2회)
- 1982년, 한·중 현대서화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2년-1991년,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3년, 국회개원 35주년기념 미술초대전, 국회의사당
- 1985년, 한·일 서예교류전, 미술회관
- 1985년, 한국현대미술 4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8년, 한국서예100년전, 예술의전당
- 1988년, 국제현대서예전, 예술의전당
- 1990년, 한국서예 국전30년전, 예술의전당
- 1992년, 오늘의 한글 서예작품초대전, 예술의전당
- 1993년, 한국서예100인초대전, 예술의전당
- 1993년-1994년, 서울서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4년, 서울주제 서예큰잔치, 예술의전당
- 1996년 8월 1일-25일, 한국서예의 오늘과 내일전, 예술의전당 서예관
- 1996년-1999년·2001년, 제18-21회·23회 예술원 미술전, 예술원미술관
- 1997년 12월-1998년 1월 18일, 전각-초서의 오늘전, 예술의전당 서예관
- 1998년 3월 17일-4월 12일, 회고전, 예술의전당 서예관
- 등 전시
- 수상
- 1938년,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 최고상
- 198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 1985년, 대한민국예술원상
- 1987년, 寶冠문화훈장
- 1994년 7월 17일, 94추사서예대상 원로작가상
- 1994년 12월, 제8회 춘강상
- 2004년 10월, 은관문화훈장
작가 소개
1921년 5월 9일(음력 4월 2일) 김윤동(金潤東)의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서경(恕卿), 호는 일중(一中)이다. 김창집(金昌集)의 6형제 중 막내 김창립(金昌立)의 후예로서, 증조부 김석진(金奭鎭)은 고종 때 형조판서를 지내고 조부 김영한(金甯漢)은 광무연간에 용인 군수를 지내는 등 조선 후기 학예를 주도했던 안동 김씨 집안에서 가학을 이었다.
경성 삼흥보통학교와 중동학교를 졸업했으며, 일가이자 조부의 절친이었던 서화가 김용진(金容鎭)으로부터 서예를 익혔다. 1942년 중동학교 졸업 당시 한글 서예 학습서인 국문서법연구서(國文書法硏究書)를 완성한 이래로 한글 서예 보급에 남다른 성과를 보였다. 당시의 저술에서는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등의 옛 판본체에 전서와 예서의 필법을 가미하여 고안한 서체를 선보였는데, 정인보(鄭寅普)에 의해 일명 ‘고체(古體)’로 명명된 글씨였다. 궁중에서 쓰던 궁체(宮體)를 연구하여 한글 서예의 보급에 노력하였고, 1947년에 쓴 「유관순 기념비」는 해방 이후 최초의 한글 비문으로, 이후의 한글 비문 제작에 견인차가 되었다.
경동공립중학교·경동고등학교 국어교사,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 창립, 일중묵연(一中墨緣) 개설, 오산학교(梧山學校) 이사장 등을 통해 후진 양성을 하였고, 한국 서예가 협회장, 국전 운영위원,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 등을 역임하며 서단의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2006년 11월 23일 별세하였다.
작품으로 「윤봉길 열사 기의비」(1949), 「백범 김구 선생 묘비」(1950), 「사육신 묘비」(1955), 「4.19혁명 기념탑」(1960), 「탑동공원 사적비」(1967), 「삼국통일 기념비」(1977), 「인촌 김성수 선생 묘비」(1989) 등이 있다. 저서로 『우리 글씨 쓰는 법』, 『우리 글씨체』, 『서도집성(書道集成)』, 『근역서보(槿域書譜)』, 『일중 김충현 서집(一中金忠顯書集)』 등이 있다.
경성 삼흥보통학교와 중동학교를 졸업했으며, 일가이자 조부의 절친이었던 서화가 김용진(金容鎭)으로부터 서예를 익혔다. 1942년 중동학교 졸업 당시 한글 서예 학습서인 국문서법연구서(國文書法硏究書)를 완성한 이래로 한글 서예 보급에 남다른 성과를 보였다. 당시의 저술에서는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등의 옛 판본체에 전서와 예서의 필법을 가미하여 고안한 서체를 선보였는데, 정인보(鄭寅普)에 의해 일명 ‘고체(古體)’로 명명된 글씨였다. 궁중에서 쓰던 궁체(宮體)를 연구하여 한글 서예의 보급에 노력하였고, 1947년에 쓴 「유관순 기념비」는 해방 이후 최초의 한글 비문으로, 이후의 한글 비문 제작에 견인차가 되었다.
경동공립중학교·경동고등학교 국어교사,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 창립, 일중묵연(一中墨緣) 개설, 오산학교(梧山學校) 이사장 등을 통해 후진 양성을 하였고, 한국 서예가 협회장, 국전 운영위원,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 등을 역임하며 서단의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2006년 11월 23일 별세하였다.
작품으로 「윤봉길 열사 기의비」(1949), 「백범 김구 선생 묘비」(1950), 「사육신 묘비」(1955), 「4.19혁명 기념탑」(1960), 「탑동공원 사적비」(1967), 「삼국통일 기념비」(1977), 「인촌 김성수 선생 묘비」(1989) 등이 있다. 저서로 『우리 글씨 쓰는 법』, 『우리 글씨체』, 『서도집성(書道集成)』, 『근역서보(槿域書譜)』, 『일중 김충현 서집(一中金忠顯書集)』 등이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