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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심형구 雲峯 沈亨求Sim HyungKoo
1908 ~ 1962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1936, 일본 동경미술학교
-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
- 기관 경력
- 황도학회(皇道學會)
- 단광회(丹光會)
- 보도사진협회
- 선전미술협회
- 1949~1961,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 1949~1958, 미국 일리노이주, Adelphi 대학 초청교수
- 1949, 예술원 회원
- 1948~1949,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초대학장
- 1941~1942, 조선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 1941,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이사
- 1940,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 등 역임
- 전시
- 개인전
- 1977, 유작전, 문화 화랑
- 1962, 유작전, 신문회관
- 1949, 개인전
- 단체전
- 1998~1999, 다시 찾은 근대미술, 덕수궁 석조전
- 1997~1998, 한국 근대미술: 유화-근대를 보는 눈, 국립현대미술관
- 1987, 한국 인물화전
- 1972, 한국 근대미술 6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 단광회전
- 구신회전
- 조선일보후원 향토미술전람회, 개성 중앙회관 강당
- 재도쿄 미술학생 종합전
- 등 전시
- 수상
- 1937, 문전 입선
- 1937, 일본제국 미술전람회 특선
- 1936~1940, 제15-19회 조선 미술전람회 특선
- 1935~1940, 제14-19회 조선 미술전람회 입선
작가 소개
1908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경기도 광주군수를 지낸 심종협(沈鍾協)이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에 유학했다.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學校)에서 데생 훈련을 받은 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 1936년 3월 졸업했다. 도쿄미술학교 재학 중인 1935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노어부」를 출품해 특선했고, 이듬해에는 「해변」으로 총독상을 수상했다.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 때는 「소녀들」과 「흥아를 지키다」의 두 작품이 특선과 입선을 했다. 1940년 「시국과 미술」(『신시대』1941.10)에서는 미술을 무기화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1940년 황도학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41년에는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조선미술가협회의 이사로 참여했다. 1943년에는 단광회(丹光會)에 참여했다.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 때는 참여작가로 활동했다.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에 미술과를 창설, 동 예술대학장이 되었으며, 1950년 아데파이대학교 초청교수로 도미(渡美)하였다가, 1958년 귀국하였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동 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하고 국전(國展) 심사위원, 국전 초대작가(招待作家) 등으로 활약하였다
화풍은 인상파적인 시각을 근저로 한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 분위기를 풍기며, 대표적인 작품에는 《수변(水邊)》《향원정》《포우즈》《피리소리》 등이 있다.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 때는 「소녀들」과 「흥아를 지키다」의 두 작품이 특선과 입선을 했다. 1940년 「시국과 미술」(『신시대』1941.10)에서는 미술을 무기화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1940년 황도학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41년에는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조선미술가협회의 이사로 참여했다. 1943년에는 단광회(丹光會)에 참여했다.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 때는 참여작가로 활동했다.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에 미술과를 창설, 동 예술대학장이 되었으며, 1950년 아데파이대학교 초청교수로 도미(渡美)하였다가, 1958년 귀국하였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동 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하고 국전(國展) 심사위원, 국전 초대작가(招待作家) 등으로 활약하였다
화풍은 인상파적인 시각을 근저로 한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 분위기를 풍기며, 대표적인 작품에는 《수변(水邊)》《향원정》《포우즈》《피리소리》 등이 있다.
출처/월간미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