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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 邊月龍Pen Varlen(Пен Варлен)

1916 ~ 1990

러시아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사항
  • 러시아 스베르들로프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 미술학교
  • 일리야 레핀 레닌그라드 회화·조각건축학교 회화과
  • 일리야 레핀 레닌그라드 회화·조각건축학교 회화과 대학원 박사
  • 전시 이력
  • 개인전
  • 2016, 국립현대미술관
  • 2016, 제주도립미술관
  • 단체전
  • 2017, 삼라만상: 김환기에서 양푸둥까지 국립현대미술관
  • 2018,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국립현대미술관
  • 등 전시
  • 경력
  • 1947, 소련미술가연맹 회원
  • 1951, 레핀 예술아카데미 조교수
  • 1953-1954, 소련문화성 지시로 북한 방문 후 평양미술대학 학장 및 고문
  • 1977-1985, 레핀 예술아카데미 데생과 정교수 역임

작가 소개

러시아 이름은 ‘펜 바를렌(Пен Варлен)’으로, 한국 이름 변월룡을 러시아어로 그대로 옮겨 읽은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6년 9월 29일 연해주 쉬코토프스키구(區)에 있는 유랑촌에서 출생했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변월룡은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12세가 되던 1928년 블라디보스토크 8호 모범 10년제 학교에 입학하였고, 21세가 되던 1937년 스베르들로프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는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이때 처음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았는데,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1940년 담당 교수의 권유로 당시 최고의 예술대학으로 꼽히던 레닌그라드 회화·조각·건축학교(독·소 전쟁 이후 일리야 레핀 회화·조각·건축 아카데미로 개편)에 입학하였다. 대학 과정과 대학원 과정을 모두 마치고 1950년 데생과 조교수에 임용되어 학생들을 지도하였으며, 1951년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53년 데생과 부교수 자리에 올랐다.
같은 해, 소련 문하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 교육성 고문관으로 파견되었다. 기존 북한의 미술교육 체계를 개선하고자 동양화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였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북한에 전수하는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처음 체류 기간은 3개월로 예정되어있었으나, 평양예술대학의 학장직을 맡으면서 체류 기간이 15개월까지 연장되었다. 이 기간 동안 미술이론가 김용준·한상진, 화가 정종여·문학수·배운성, 작가 한설야·이기영, 무용가 최승희 등 북한의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한국전쟁 휴전 당시 판문점에서의 북한 포로 송환 모습 등의 역사기록화를 비롯하여, 평양 대동문, 개성 선죽교 등 다수의 풍경화도 그렸다. 건강 상의 문제로 러시아로 돌아가 머물던 중 북한으로부터 영구 귀화를 요구받게 된 변월룡은 이를 거절하였고, 그 이후로 북한에 입국이 거부되어 더 이상 방문하지 못했다.
1954년부터는 레핀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작품 제작에 힘썼다. 1961년 이후로는 유럽 대륙을 여행하며 여러 작품을 남겼다. 1977년 데생과 정교수로 승진하였으나, 1985년 건강이 나빠지면서 퇴직하였다.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를 4개월 앞둔 1990년 5월 25일 74세를 일기로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유언에 따라 그의 묘비에는 한글로 이름을 새겼다.
유화, 판화, 데생, 수채화, 포스터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으며, 특히 동판화는 변월룡의 예술성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내용적으로는 인물화, 풍경화, 역사기록화 등을 주로 남겼다. 2016년 3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한국 근대 거장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가 이루어진 바 있다.
출처/두산백과, 김달진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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