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기(聖氣), 호는 오서(梧墅). 할아버지는 경규(敬圭)이고, 아버지는 예조참의 종순(鍾淳)이며, 어머니는 조영소(趙榮素)의 딸이다.
1813년(순조 13) 사마시를 거쳐, 181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가주서(假注書)로서 경연관(經筵官)이 되었고, 다음해에는 승문원에 보임되어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냈다. 1824년에는 이가우(李嘉愚)·이헌위(李憲瑋)·김정희(金正喜) 등과 함께 삭직을 당하였다가, 1837년(헌종 3)에는 김홍근(金弘根)과 함께 실록교수당상(實錄校讎堂上)의 직을 맡았다. 이어 1844년에 호조판서·이조판서 등을 거쳐 이듬해에는 원접사(遠接使)가 되었다. 1846년에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로 부사(副使) 조형복(趙亨復), 서장관(書狀官) 심희순(沈熙淳)과 함께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11월에는 김흥근(金興根)과 함께 국조보감찬집청교정당상(國朝寶鑑纂輯廳校正堂上)을 제수받았다.
1848년 서양선(西洋船)의 출몰로 동해안지방의 민심이 소란해지자 함경도관찰사로 특임되었다. 그 뒤 철종이 즉위하자 우의정에 올라 실록청총재관(實錄廳摠裁官)을 겸하였다. 다음해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4월에 소를 올려 그 직을 사임하였다. 1854년(철종 5) 12월에 판중추부사로 있다가 죽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작가의 경매 작품
제 46회 장터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