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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흠 高和欽Ko WhaHum
1923 ~ 1999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1942년 전주사범대학교 심상과
- 1945년 일본 동경 녹음사회학교 회화과
- 기관 경력
- 1961년-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 1976년-1988년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 1976년-1981년 전국대학미전 심사위원
- 1978년-1984년 전라북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 198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 1983년 수채신작파전 창립 회장
- 1998년 한국미술협회고문, 한국수채화협회고문
- 1998년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 파리국제예술 한국위윈회 부회장
- 전시
- 1947년-1988년, 개인전 다수
- 1954년-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전
- 1956년-1976년, 창작미협 창립회원전, 미국 공보관 등
- 1972년-1976년, 한일 작품 교류전, 후꾸오까
- 1973년, 한국 현역 화가 100인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7년, 한국 현대 미술 대전:서양화, 국립현대미술관
- 1977년, 한국 미술대상전 초대, 국립현대미술관
- 1977년, 아시아 현대 미술전, 동경
- 1981년, 한국 현대 미술 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1년, 한국미술 `81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1년, 상형회회원전, 아랍 미술관
- 1982년, 아시아 현대미술전 초대, 동경
- 1982년, 상형회회원전, 문진 미술회관
- 1982년, 개관 기념전, 전주 전북 예술회관
- 1983년, 수채신작파전, 전주 전북 예술회관 등
- 1983년, 한중일 수채화 합동전, 미술회관
- 1983년, 일본아시아교우회 합동전, 문진 미술회관
- 1983년, 국전 출신 작가전, 미술회관
- 1983년, 한국 현대 미술전, 밀라노
- 1984년, 한일 작품 교류전, 일본
- 1984년-1987년,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5년, 초대전, 전북 MBC
- 1985년, 아시아 국제 미술 초대전, 일본
- 1986년, 서울 아시아 현대 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창작미술협회 30주년 기념전
- 1986년, 한국 현대 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한국 수채화 국제 합동전
- 1986년-1987년, 서울미술대전 초대, 국립현대미술관
- 1987년, 한국수채화협회전
- 1987년, 제2회 아시아 국제미술전, 대만 대북 국립역사박물관
- 1988년, 세계 수채화대전
- 1988년, 한국 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8년-1993년,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89년-1993년, 아시아 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 1992년, 원로작가 회화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4년, 서울국제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 1995년, 파리국제예술 서울 회화전, 서울 갤러리, 부산 문화센터
- 1996년, 제21회 한국수채화협회전, 서울 갤러리
- 1996년, 한국수채화 100주년 기념 전국 순회전
- 1997년-1999년, 제22~24회 한국수채화협회전
- 1997년, 파리국제예술 서울 파리전
- 1998년, 중원 미술의 향기, 대전 시립미술관
- 수상
- 1938년-1939년, 제18, 19회 조선 미술전람회 입선
- 국민훈장 모란장
작가 소개
고화흠은 전남 구례출신의 서양화가로 한국적 자연주의에서 출발하여 점차 감각적인 형태 해석을 거쳐 서정적인 추상 경향에 도달한 작가이다. 그는 뛰어난 감성의 소유자로 서정적인 회화 세계를 추구하였는데 자연의 한 귀퉁이 또는 인생의 후미진 곳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려 왔다. 1940년 일본 동경 녹음사(綠陰社) 화학교를 졸업하고 미술창작활동과 대학교육 일선에서 미술인재양성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국전 등 국내 최고 권위의 공모전을 통해 화가로서의 기량을 다졌으며 각종 그룹전과 개인전을 통해 작품발표와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1940-1950년대 구상에서, 1960년대의 반 추상시대를 거쳐, 1967년 이후 완전한 추상세계에 들어서고 있다. 특히 고화흠은 초창기 자연주의와 인상주의에 연관된 경향의 구상작품세계를 추구하였다. 40,50년대 초기에는 구상회화를 의욕적으로 선보여 왔으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추상회화의 경향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는 강용운 양수아 등과 함께 전남지역 추상화 주요작가 3인에 꼽힐 정도로 추상미술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한 몫을 했다.
그는 자신의 회화관을 피력한 한 글에서 추상작품 「백안(白岸)」시리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천안(川岸) 강안(江岸) 해안(海岸) 등이다. 장자의 호접몽은 아닐지라도 안에 대한 관조와 일합의 백일몽이다. 40,50년대 구상에서 60년대의 반추상시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항상 옛날에서 빛나고 있음은 아니다. 오늘은 오늘만을 보이리라.”(자작시 「백안의 변」에서) 그의 주요 작품 「백안」은 비구상 작품으로 원색의 색감을 덧칠하여 색의 변주 속에 면과 면, 선과 선이 분할적인 구도로 교차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작가의 예술적 표현도 변화하고 달라지고 있는데 예술성을 확대하려는 구도적 태도가 돋보인다.
색감과 구도를 절제하면서 잦아드는 이미지를 구현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고화흠은 광주와 목포, 전주 등지에서 수 회의 개인전을 열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발표했다. 또한 국전에 참여하여 1961년 추천작가, 1971년에는 초대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이후, 국전과 전남도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화단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조선미술전’을 비롯해‘창작미술협회전’‘수채 신작파전’ 등 다양한 그룹 활동을 이끌어 미술발전을 도모하였다. 고화흠은 유화작업은 물론 수채화에도 많은 애정과 관심을 보탰다. 원광대미술대학장을 역임하는 등 미술교육의 수장으로서도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미술교육과 미술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1940-1950년대 구상에서, 1960년대의 반 추상시대를 거쳐, 1967년 이후 완전한 추상세계에 들어서고 있다. 특히 고화흠은 초창기 자연주의와 인상주의에 연관된 경향의 구상작품세계를 추구하였다. 40,50년대 초기에는 구상회화를 의욕적으로 선보여 왔으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추상회화의 경향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는 강용운 양수아 등과 함께 전남지역 추상화 주요작가 3인에 꼽힐 정도로 추상미술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한 몫을 했다.
그는 자신의 회화관을 피력한 한 글에서 추상작품 「백안(白岸)」시리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천안(川岸) 강안(江岸) 해안(海岸) 등이다. 장자의 호접몽은 아닐지라도 안에 대한 관조와 일합의 백일몽이다. 40,50년대 구상에서 60년대의 반추상시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항상 옛날에서 빛나고 있음은 아니다. 오늘은 오늘만을 보이리라.”(자작시 「백안의 변」에서) 그의 주요 작품 「백안」은 비구상 작품으로 원색의 색감을 덧칠하여 색의 변주 속에 면과 면, 선과 선이 분할적인 구도로 교차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작가의 예술적 표현도 변화하고 달라지고 있는데 예술성을 확대하려는 구도적 태도가 돋보인다.
색감과 구도를 절제하면서 잦아드는 이미지를 구현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고화흠은 광주와 목포, 전주 등지에서 수 회의 개인전을 열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발표했다. 또한 국전에 참여하여 1961년 추천작가, 1971년에는 초대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이후, 국전과 전남도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화단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조선미술전’을 비롯해‘창작미술협회전’‘수채 신작파전’ 등 다양한 그룹 활동을 이끌어 미술발전을 도모하였다. 고화흠은 유화작업은 물론 수채화에도 많은 애정과 관심을 보탰다. 원광대미술대학장을 역임하는 등 미술교육의 수장으로서도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미술교육과 미술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출처/국립현대미술관, 전남문화예술인DB,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