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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김양정 定菴 金養楨Kim YangJeong
1785 ~ 1847
조선
작가약력
- 1785(정조 9)~1847(헌종 13). 조선 후기의 학자.
작가 소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제언(濟彦), 호는 정암(定菴). 김치응(金致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종택(金宗宅)이고, 아버지는 김해진(金海進)이며, 어머니는 예안 김씨(禮安 金氏)로 김훈(金訓)의 딸이며, 부인은 장수 황씨(長水 黃氏)로 생원 황반로(黃磻老)의 딸이다.
김양정(金養楨)은 어릴 때 가학에 정진하였고, 자라서는 정종로(鄭宗魯)의 문인이 되었다. 학문이 고명하여 1814년(순조 14)에 도남 서원(道南 書院)과 도산 서원(陶山 書院)에서 중용(中庸)을 강론하였다. 아버지 상중(喪中)에 만사, 뢰문, 묘지문 등을 수습하여 『통모록(痛慕錄)』을 편찬하였다. 영남의 명유들과 폭넓게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족형 김양휴(金養休), 족질 김희유(金羲) 등과 더불어 후산사(後山祠), 도담사(道潭祠)에서 강회를 열어 후진들을 지도하였다.
1827년 의성 향교 전교가 되어 향교를 중수하고, 기문을 지었다. 1832년 겨울 도담사를 건립할 때 의절(儀節)을 정하고, 『창건록(創建錄)』을 지었다. 1834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도담사 앞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 교담(鮫潭)이라 하고, 이곳에서 시상을 떠올리는 장소로 삼았다. 이어서 「후송재 중수기(後松齋 重修記)」를 남겼다.
1843년(헌종 9) 『퇴계 선생 문집』 중간(重刊)에 참여하였고, 이야순 등과 함께 고운사(孤雲寺)에서 『천사 선생 문집(川沙 先生 文集)』, 『제암집(濟菴集)』, 이종수(李宗洙)의 유고(遺稿)를 교정하였다.
아버지 사망한 후 지었다는 『통모록』은 전하지 않고 『추로 논사록(鄒魯 論士錄)』 1책과 『정암 선생 문집(定菴 先生 文集)』 9권 5책이 전한다. 이 문집은 1950년대 5세손인 김위윤 등이 간행하였다. 시 200여 수, 간찰 11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동(觀德洞)에 있다.
김양정(金養楨)은 어릴 때 가학에 정진하였고, 자라서는 정종로(鄭宗魯)의 문인이 되었다. 학문이 고명하여 1814년(순조 14)에 도남 서원(道南 書院)과 도산 서원(陶山 書院)에서 중용(中庸)을 강론하였다. 아버지 상중(喪中)에 만사, 뢰문, 묘지문 등을 수습하여 『통모록(痛慕錄)』을 편찬하였다. 영남의 명유들과 폭넓게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족형 김양휴(金養休), 족질 김희유(金羲) 등과 더불어 후산사(後山祠), 도담사(道潭祠)에서 강회를 열어 후진들을 지도하였다.
1827년 의성 향교 전교가 되어 향교를 중수하고, 기문을 지었다. 1832년 겨울 도담사를 건립할 때 의절(儀節)을 정하고, 『창건록(創建錄)』을 지었다. 1834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도담사 앞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 교담(鮫潭)이라 하고, 이곳에서 시상을 떠올리는 장소로 삼았다. 이어서 「후송재 중수기(後松齋 重修記)」를 남겼다.
1843년(헌종 9) 『퇴계 선생 문집』 중간(重刊)에 참여하였고, 이야순 등과 함께 고운사(孤雲寺)에서 『천사 선생 문집(川沙 先生 文集)』, 『제암집(濟菴集)』, 이종수(李宗洙)의 유고(遺稿)를 교정하였다.
아버지 사망한 후 지었다는 『통모록』은 전하지 않고 『추로 논사록(鄒魯 論士錄)』 1책과 『정암 선생 문집(定菴 先生 文集)』 9권 5책이 전한다. 이 문집은 1950년대 5세손인 김위윤 등이 간행하였다. 시 200여 수, 간찰 11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동(觀德洞)에 있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