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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헌 김영 槐軒 金瑩Kim Yeong

1765 ~ 1840

조선

작가약력

  • 1765(영조 41)~1840(헌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작가 소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의겸(義兼), 호는 괴헌(槐軒). 아버지는 수직(壽職)으로 정3품 문관 품계인 통정대부에 오른 김경집(金慶集)이고, 어머니는 청도김씨로 첨지중추부사 김태빈(金兌彬)의 딸이다.
김영(金瑩)은 1765년 안동부(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에서 태어났다. 1804년(순조 4) 문과에 합격하여 권지승문원정자가 되었고, 종부시주부·의릉령·예조정랑을 거쳐 병조좌랑이 되었다. 1821년(순조 21) 사헌부지평이 되었으며, 1827년(순조 27)에는 자여도찰방으로 구황사업에 힘써 백성들의 생활을 돌보는 정책을 폈다. 이듬해 본도 참시관이 되어 과장(科場)의 공정(公正)을 기하였다.
1829년(순조 29) 사헌부장령에 승진하여 여러 차례 소명(召命)이 있었으나 사양하고 고향인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에서 월은정사(月隱精舍)를 짓고 살았다. 월은정사에는 한 그루의 회나무가 있었는데, 스스로 괴헌이라 호를 짓고 회나무 아래를 소요하면서 세상의 일을 잊고 지냈다. 말년에 서적을 많이 모아 두고 배움을 청하는 후진들을 양성하여 ‘명망 있는 영남의 선비’라는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1840년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7번지[영봉로 883]의 김영이 거처하였던 괴헌 고택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영의 학문에 관한 기록은 구체적으로 전하지 않다. 다만 후학인 박승진(朴勝振)의 평가를 근거로 김영의 학문적 경향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박승진은 김영을 “문헌(文獻)의 가문인 연안김씨 문중에서 태어나 속(俗)의 자태를 버리고 경학(經學) 연구를 업으로 삼아 의(義)를 밝히는 학문에 주력한 학자이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김영의 고조할아버지 김개국(金蓋國)이 퇴계학파의 영향을 받아 주자학·심학 위주의 학풍에 주력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영 역시 가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저서로는 『괴헌집(槐軒集)』 4권 2책이 전한다.
묘소는 안동시 예안면의 북쪽 사금악(沙金岳)에 있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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