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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암 류연즙 汎庵 柳淵楫Ryu YeonJeup

1853 ~ 1933

조선·근대

작가약력

  • 1853(철종 4)~1933. 조선 말기의 유학자.

작가 소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용(而用), 호는 범암(汎庵). 할아버지는 류치윤(柳致潤)이고, 생부는 류장호(柳章鎬)이며,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이휘정(李彙正)의 딸이다. 첫째 부인인 영천이씨(永川李氏) 이재인(李在寅)의 딸에게서 2남 1녀, 둘째 부인인 의성김씨(義城金氏) 김재수의 딸에게서 2남 1녀를 두었다.
류연즙(柳淵楫, 1853~1933)은 석은(石隱) 류기호(柳基鎬)와 김흥락(金興洛)에게서 배웠다. 류기호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스승의 교육 과정이 매우 엄정하여 여러 학생들이 견책을 받기도 했지만, 류연즙은 항상 법도를 지켜 어긋나는 법이 없어 스승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류연즙의 천재성과 관련해서는 여러 일화가 전한다. 1866년(고종 3) 금릉(金陵)에 갔을 때 귀양 와 있던 학사(學士) 김종한(金宗漢)을 만난 뒤 작은아버지와 함께 가서 가르침을 청하자, 김종한은 류연즙을 한 번 보고 경탄하면서 “아마 천재인 것 같다”라고 하였다.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은 류연즙을 어루만지고 칭찬하면서 아버지 도정공(都正公)께 말씀하길 “절대 빨리 이루려다가 원대한 목표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고, 외삼촌인 이만기(李晩耆)에게는 “내가 여러 고을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이처럼 재주가 많고 총명한 아이는 본 적이 없다”라고 하였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는 등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경향에 따른 국내외의 혼란이 가중되자 자신의 방에 ‘산림에 은둔하며 벼슬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표(霧豹)’를 써 두고 성리학 탐구에만 전념했다. 묘소는 표곡(瓢谷)의 남산(南山)에 있다.
문집인 『범암집(汎庵集)』 10권 5책이 전한다. 『범암집』은 석인본으로 류연즙이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지난 1958년에 간행되었다. 손자 류철훈(柳轍薰)이 지은 발문에 따르면 집안에 남아 있던 류연즙의 유문을 정리하고 각 가문에 흩어져 있는 글들을 조사 수집하여 12책으로 묶었는데, 이것을 염암(恬庵)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이미 정리한 자료와 함께 세 차례에 걸친 교정 및 수정 작업을 거쳐 10권 5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문집 가운데 시는 자연과 고적을 소재로 다룬 글이 많고, 망국에 대한 슬픔이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초혼사(招魂詞)」에서는 “나라 없이 사는 사람의 혼도 이미 죽은 사람과 다름이 없어서 혼을 부를 곳조차 없다”라면서 망국의 슬픔을 묘사하였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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