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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운 강노 豹雲 姜㳣Kang Roh

1809 ~ 1887

조선

작가약력

  • 1809(순조 9)~1887(고종 24). 조선 말 개항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문신으로 흥선 대원군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

작가 소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기중(期中), 호는 표운(豹雲)·정은(貞隱),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현감을 지낸 강이구(姜彛九)의 아들이다.
1837년(헌종 3) 진사시를 거쳐 1848년(헌종 14)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정자(正字)가 된 뒤 홍문관 응교를 거쳐, 1850년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
강노의 문중은 북인계로 노론 중심의 세도정치 시기에는 중용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 집정 후 남인계와 북인계가 많이 기용됨에 따라 강노는 1866년 병인양요로 피폐해진 강화도에 위유사(慰諭使)로 나가게 되었다. 그 뒤 흥선 대원군이 계속 중용하여 1871년 병조 판서를 거쳐 1872년 좌의정이 되었다. 1873년 흥선 대원군을 탄핵한 유생 최익현(崔益鉉)의 처벌을 주장하였다가 고종이 친정하게 되면서 우의정 한계원(韓啓源)과 함께 파직당하였다.
1874년 판중추부사로 재기용되어 관직에 있던 중 1878년 효휘전(孝徽殿)의 참례(參禮)에 참석하지 않은 죄로 잠시 유배되었다가 다시 복직되었다. 다음해 일본의 인천항 개항 요구에 반대하였으며, 판중추부사로 있을 때 사임하여 봉조하(奉朝賀)로서 기로소에 들어갔다.
1883년 임오군란 때 난도(亂徒)와 결탁하였다는 혐의로 경상남도 안의에 유배되었다가 다음해에 풀려났다. 1887년 사면되었고, 그해 사망하였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작가의 경매 작품

제65회 여름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