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회산(晦山)이다. 합천(陜川) 야로(冶爐)의 서당에서 수학하였다. 대구에서 일본인들에게 대항하는 민족 산업 육성에 노력한 경제인으로 대구상무소(현 상공회의소) 초대소장을 역임하였으며 국채보상운동 등에 가담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서울 양반가에서 태어난 그는 중추원의관으로 정3품통정대부(正三品通政大夫)까지 올랐으나 을사조약이 채결되자 관식을 사퇴하였다. 구국운동을 위해 상해로 가려 하였으나 부친인 야은 박문환(倻隱 朴文換, 1835-1911)과 스승인 시암 이직현(是庵 李直鉉, 1850-1928)이 있던 합천으로 낙향하였다가 대구에 정착하였다.
50세 이후 서예가의 삶은 살아간 그는 1922년 서병오가 교남시서화연구회를 창립할 때 부회장을 맡았다. 서병오 사후 쏠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많은 작품을 남겼고 세필과 대자를 모두 잘 썼으며 예리하고 청경(淸勁)하다. 그는 해인사, 통도사, 운문사, 쌍계사, 팔공산 파계사 등 많은 곳에 편액과 주련을 남겼다.
출처/박씨문화원
작가의 경매 작품
제 53회 장터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