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박주담(朴株淡)은 생졸년(生卒年) 및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 말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 진주박물관에 소장된 <낙화화조십곡병풍(烙畵花鳥十曲屛風)>에 `월산제(月山題)`라는 관서(款署)와 `화화도인(火畵道人)`, `월산(月山)`, `박주담인(朴株淡印)`이라는 세 개의 도장이 찍혀 있어 작가가 박주담(朴株淡)이며 화화도인, 월산으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대화문화관(大和文化館)에서 냈던 도록의 도판해설인 <근역서화징 槿域書畵徵>에는 낙화를 잘 그렸고 호를 화화도인이라 했던 박창규(朴昌珪)에 대한 기록이 있다. 박창규는 호를 양간 또는 수산(遂山)이라고도 했으며 1708년(정조7)에 태어나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전주(全州)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세창(吳世昌)은 ""낙화(烙畵)란 우리 나라의 특기(特技)로서 지금은 그의 후손인 소초 병수(小蕉 秉洙)가 그 업(業)을 잇고 있다.""라고 하고 있어 박주담도 이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직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낙화란 불에 달군 인두로 화면(畵面)을 지져서 그림을 그리는 특이한 기법으로 일본에서는 소회(燒繪)라고 부른다. 인두로 지지는 기법상의 제약으로 그림의 격조는 그다지 높지 않으나 낙화라는 특이한 기법을 보이는 예로서, 그리고 박주담(朴株淡)이라는 일명(逸名)화가의 이름을 전하는 사료적(史料的)인 면에서 작품의 가치가 있다.
출처/국가문화유산종합정보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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