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중국 당대 초기의 서예가로 자는 신본(信本), 담주 임상(후난성) 사람이다. 진의 광주자사였던 부 흘(父紇)이 모반혐의로 죽음을 당하자 아버지의 우인인 강총에게서 양육되었다. 수양제(隋煬帝)를 섬겨 태상박사가 되고 당 고조가 즉위한 뒤 급사중(給事中)의 요직에 발탁된다. 처음 왕희지의 서예를 배우고 후에 일가를 이루어 그의 서예명은 고려에까지 알려졌다.
무덕7년(624)에 칙명에 의하여 배구, 진숙달 등과 함께 『예문유취(藝文類聚)』100권을 편찬했다. 태종의 홍문관에서 우세남과 함께 귀족 자제에게 해법을 교수하고 후에 “태자솔경령(太子率更令)"이 되어 발해남작을 받고 ‘은청광록대부’가 되었다. 모든 서체를 다 잘하였으나 특히 해서에 훌륭하였다. 우세남, 저수량, 설직과 함께 “초당 4대가”로 꼽힌다.
현존하는 서적에 『황보탄비(皇甫誕碑)』, 『화도사탑명(化度寺塔銘)』, 『9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온언박비(温彦博碑)』등 해서비 외에 예서의 『방언겸비(房彦謙碑)』, 『사사첩(史事帖)』, 『몽존첩(夢尊帖)』등의 행서, 기타 『순화각첩』에 각(刻)된 척독의 종류 『천자문』등이 있다.
출처/미술대사전(인명편)
작가의 경매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