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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 尹亨根Yun HyongKeun

1928 ~ 2007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사항
  • 1957, 홍익대학교 서양화 학사
  • 1949, 서울대학교 서양화 수학 수학
  • 경력 사항
  • 한국미술협회 고문
  •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 미술대상 심사위원
  • 1967~1984, 홍익대학교 강사
  • 1984~1992, 경원대학교 예술대 회화과 교수
  • 1988, 경원대학교 예술대 학장
  • 1990~1992, 경원대학교 총장
  • 전시 이력
  • 개인전
  • 1997, 개인전, 창동갤러리
  • 1994, 개인전, 토탈 미술관
  • 1994, 개인전, 텍사스 치나티재단
  • 1993, 개인전, 뉴욕 도날드저드재단
  • 1993, 개인전, 필라델피아 룩스갤러리
  • 1991, 개인전, 오사카 야마구찌 갤러리
  • ...
  • 1981, 개인전, 파리
  • 1978, 개인전, 동경 화랑
  • 1977, 개인전, 공간 화랑
  • 1977, 초대개인전, 서울 화랑
  • 1976, 개인전, 동결 村松 화랑
  • 1976, 개인전, 문헌 화랑
  • 1975, 개인전, 문헌화랑
  • 1974, 개인전, 명동 화랑
  • 1973, 개인전, 명동 화랑
  • 1966, 개인전, 신문회관
  • 단체전
  • 2004, 한국의 평면회화, 어제와 오늘, 서울시립미술관
  • 2003, 드로잉의 새로운 지평, 국립현대미술관
  • 2001, 한국현대미술의 전개 : 1970-90, 현대갤러리
  • 2000, 새천년의 항로 : 주요 국제전 출품작가들, 1990-99, 국립현대미술관
  • 1999, 한국미술 50년 : 1950-1999, 현대갤러리
  • 1997, 정신대 할머니 귀국기금마련전, 모던갤러리
  • 1996, 경남 현대 미술제, 창원갤러리
  • 1996,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 현대갤러리
  • 1995, 제46회 베니스 비엔날레
  • 1995, 돝섬 비엔날레, 마산
  • 1995, 김완수, 윤형근, 마산 창동갤러리
  • 1995, NICAF Yokohama 95, 현대갤러리, 요코하마
  • ...
  • 1983~1985,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3, 한국현대미술전, 순회전
  • 1982, 현대 종이의 조형-한국과 일본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8, 제4회 인도 트리엔날레, 인도 뉴델리
  • 1977, 한국현대미술대전 : 서양화, 국립현대미술관
  • 1977,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 동경 센트랄 미술관
  • 1977, 현대작가 10인 초대전, 유네스코
  • 1976, 제8회 까뉴 국제 회화제, 프랑스
  • 1976, 한국현대미술 5인전, 서울 화랑
  • 1975, 제13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브라질 상파울로
  • 1975, 제1회 서울 현대미술제, 미술회관
  • 1969, 제10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브라질 상파울로
  • 1963, 현대작가 초대전, 경복궁 미술관
  • 1961~1963, 앙가쥬망전, 중앙공보관
  • 등 전시
  • 수상 내역
  • 김수근문화상
  • 한국미술대상전 대상(지명부문)

작가 소개

윤형근(尹亨根)은 한국 현대 화가이다. 그는 1928년에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에서 태어났다. 윤형근은 제2공립 심상소학교(현 미원초등학교)와 청주상업학교를 다녔고, 1943년에 ‘전국 상업학교 학생 작품 포스터 전람회’에서 입선을 하며 그림에 두각을 보였다. 그는 1945년에 청주상업학교 졸업 후 동경미술학교로의 유학을 계획했으나 좌절되었고, 미원금융조합에 입사하여 서기로 근무했다. 윤형근은 1947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국립대학교 설립안 반대 시위에 참여한 일로 1949년에 제적당했다. 그는 이 전력으로 인해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보도연맹에 끌려가기도 했다.
가세가 기울자 윤형근은 실질적인 장남의 역할을 하며 한국전쟁 때부터 한동안 여러 지역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가계에 보탰다. 그는 전쟁 중에 피란을 가지 않고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이유로 1956년에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휴전 후에 윤형근은 홍익대학교 회화과 교수를 지내던 김환기(金煥基)의 도움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편입하여 1957년에 서른의 나이로 졸업했다. 윤형근은 1961년에 황용엽(黃用燁)의 권유로 미술단체인 앙가주망(engagement)을 통해 작품 발표를 하며 본격적인 화단 활동을 시작했다.
숙명여자고등학교의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윤형근은 1973년에 목격한 부정입학 사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장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윤형근은 반공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고 1980년까지 요시찰 인물로 감시를 받으며 약 10년간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이 시기부터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작업 활동에 몰두했다. 그의 작품들은 1973년에 명동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윤형근은 단색화와 맥락을 같이 하며 국내와 해외에서 입지를 다지며 각종 전시에 초대되었다. 1980년 말부터 1982년까지 파리(Paris)에 머물렀던 윤형근은 먼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던 김창열(金昌烈), 한묵(韓默), 김기린(金麒麟), 정상화(鄭相和) 등과 교유하기도 했다. 윤형근은 2007년에 사망했다. 윤형근은 김환기의 사위이다.
1973년 이전에 제작된 윤형근의 작품들은 초기 작품으로 분류된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밝은 색채의 추상화가 주를 이루며, 실험적인 경향을 보인다. 또한 일부 작품들에서는 그의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의 영향이 확인되기도 한다. 윤형근은 1960년대 초반에 앙가주망에서 잠시 활동하며 단체전에 참여했고, 1966년에는 신문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윤형근의 작품으로는 푸른 바탕에 여러 색의 사각형들이 나선형으로 배치된 1966년의 제목 미상 작품, 천지문을 연상시키듯 붓을 내려그었지만 작품의 크기가 작고 다양한 색이 사용된 ‘무제(Untitled, 1970)’, ‘드로잉(Drawing, 1972)’ 등이 있다.
윤형근은 숙명여고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온 1973년부터 ‘천지문’이라고 칭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는 청색과 다갈색을 섞어 만든 검정색 물감을 큰 붓으로 찍어서 면이나 마포에 내려그어 기둥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만들었다. 이렇게 단순한 색채와 형태, 작업 과정의 작품들은 이전까지 윤형근이 겪은 인생 역경이 반영된 것이며 작품과 작업 과정에 있어서 순수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윤형근은 초반에 주로 두 개의 기둥을 그려 문과 같은 형태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후 여러 개의 기둥을 그리던 그는 5 · 18 민주화 운동 소식을 접하고 ‘다색(1980)’과 같이 기울어진 기둥들이 쓰러지는 인간 군상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순수한 검정에 가까운 색으로 색면을 그린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윤형근은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인 단색화에 속하는 작품을 제작한 작가로서 의의가 크다. 특히 그는 단순함과 순수함을 추구하는 작품을 통해 한국 전통 미학이 강조한 수수함과 겸손함을 현대적 회화로 풀어내는 데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더불어 그의 작품은 그가 겪고 들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출처/월간미술, 김달진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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