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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천 김경승 瓢泉 金景承Kim KyongSeung
1915 ~ 1992
한국
조소
작가약력
- 학력
- 1939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각과 졸업
- 1967년 일본 동경미학교 서양화과 졸업
- 기관 경력
- 경성사범학교 교사
- 1939년-1972년 홍익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및 교수
- 1943년, 1944년 제22회, 23회 조선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 1948년-1968년 서울시 문화위원, 문교부 예술위원
- 1949년-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 1963년 4.19학생 혁명 기념탑, 수유동
- 동남아 순방문교부 예술요원
- 예술원 원로회원
- 1971년-1992년 미협 고문
- 1972년-1992년 예술원 정회원
- 1973년-198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진흥위원
- 1974년 제3회 아시아예술심포지엄 한국대표
- 1976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운영위원
- 1981년-1992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1982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추천작가회 회장
- 198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 1985년 이승만박사 동상 제작 건립, 하와이 호놀루루
- 전시
- 재동경 미술협회전, 총독부 미술관
- 1961년-1962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순방, 동남아 9개국
- 1970년, 동경 올림픽전, 동경
- 1974년, 한국 현대 조각 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7년·1979년, 개인전
- 1981년, 한국미술 `81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1년-1989년, 예술원 미술분과회원전, 갤러리 현대
- 1982년, 82 현대 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3년, 국전출신작가회전, 미술회관
- 1984년, 한국 인체 조각전, 호암미술관
- 1984년-1985년, `84, `85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5년, 현대미술 4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5년, 원로 작가 초대전: 김경승 김충현 류경채 장우성 외 3인, 국립현대미술관
- 1985년, `85 서울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86 서울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86 서울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7년, `87 서울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9년, `89 한국 조각 미술대전, 한국무역센터
- 1989년-1990년, `89, `90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0년, 한국 미술-오늘의 상황전, 예술의전당
- 1992년, 한국 근대미술 명품전, 호암미술관
-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가 작품전, 대구, 강릉
- 수상
- 1939년-1944년, 조선 미술전람회 특선
- 1958년, 서울시문화상
- 1964년, 3.1문화상
- 196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 1982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작가 소개
본관은 설성(雪城). 호는 표천(瓢泉). 개성 출신. 1933년 일본에 건너가 가와바다화학교(川端畫學校)에서 데생 훈련을 쌓고 다음 해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 校) 조각과에 입학, 1939년에 졸업하였다. 1967년 같은 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양화계에서 크게 활약한 인승(仁承)과는 친형제 사이이다.
1937∼1944년 조선미술전람회 조각부에 인물상과 두상(頭像)이 거듭 입선하였다. 그리고 1940년부터 「목동」·「어느 감정」·「여명」 등이 연이어 특선함으로써 추천 작가가 되어 각광을 받았다.
특히 「여명」은 한복 바지저고리에 해머를 든 노동자상을 사실적 역동감으로 조형하여 민족색 짙은 작품으로 주목되었다. 그러나 광복 후 뚜렷한 특질의 창작적 작품 활동보다는 미술 대학 교수직과 역사 인물상 또는 기념 동상 제작으로 많은 실적을 남겼다.
주로 소녀와 젊은 여인의 전신 또는 반신 나체상으로 시종된 작품들은 대개 1949년 이후 국전(國展)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제1회 국전 때부터 추천 작가·심사 위원으로 참가한 뒤로 마지막 제30회(1981) 때까지 초대 출품한, 엄격한 사실주의와 서정적 시각으로 포착한 여러 자세 및 움직임의 나녀상들이 순수한 창작 활동의 전모였다.
그에 비하여 기념 동상과 기념물 제작은 두드러지게 거듭되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상」(1955년)·「안중근의사상」(1959년)·「세종대왕상」(1968년)·「김구선생상」(1968년)·「김유신장군기마상」(1969년)·「정몽주선생상」(1970년) 등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상」(1957년) 등이 주요 동상 작품들이고, 그밖에 청동 주조의 많은 초상 작품들을 만들었다. 기념물로는 「4·19학생혁명기념탑」(1963년) 등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홍익대학교 교수 및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역임하였으며, 1958년 서울시문화상 미술부문상, 1964년 3·1문화상 예술본상, 1969년 대한민국예술원 공로상, 198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소년 입상」(1943년)·「춘몽」(1961년)·「잠자는 여인」(1967년)·「피리 부는 소녀」(1980년) 등이 있다.
1937∼1944년 조선미술전람회 조각부에 인물상과 두상(頭像)이 거듭 입선하였다. 그리고 1940년부터 「목동」·「어느 감정」·「여명」 등이 연이어 특선함으로써 추천 작가가 되어 각광을 받았다.
특히 「여명」은 한복 바지저고리에 해머를 든 노동자상을 사실적 역동감으로 조형하여 민족색 짙은 작품으로 주목되었다. 그러나 광복 후 뚜렷한 특질의 창작적 작품 활동보다는 미술 대학 교수직과 역사 인물상 또는 기념 동상 제작으로 많은 실적을 남겼다.
주로 소녀와 젊은 여인의 전신 또는 반신 나체상으로 시종된 작품들은 대개 1949년 이후 국전(國展)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제1회 국전 때부터 추천 작가·심사 위원으로 참가한 뒤로 마지막 제30회(1981) 때까지 초대 출품한, 엄격한 사실주의와 서정적 시각으로 포착한 여러 자세 및 움직임의 나녀상들이 순수한 창작 활동의 전모였다.
그에 비하여 기념 동상과 기념물 제작은 두드러지게 거듭되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상」(1955년)·「안중근의사상」(1959년)·「세종대왕상」(1968년)·「김구선생상」(1968년)·「김유신장군기마상」(1969년)·「정몽주선생상」(1970년) 등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상」(1957년) 등이 주요 동상 작품들이고, 그밖에 청동 주조의 많은 초상 작품들을 만들었다. 기념물로는 「4·19학생혁명기념탑」(1963년) 등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홍익대학교 교수 및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역임하였으며, 1958년 서울시문화상 미술부문상, 1964년 3·1문화상 예술본상, 1969년 대한민국예술원 공로상, 198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소년 입상」(1943년)·「춘몽」(1961년)·「잠자는 여인」(1967년)·「피리 부는 소녀」(1980년) 등이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