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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龍山人 金容鎭

Kim YongJin

  • 노귤하숙

盧橘夏熟

Loquat

지본채색
Ink and Color on Paper

21×18㎝

좌측 하단에 낙관

배접

추정가

  • KRW  100,000 ~ 300,000

응찰현황

* 마감시간 : 06. 25 - 02:50:00(PM)

남은시간

시작가

50,000 KRW

응찰단위

10,000 KRW

낙찰가 (총6회 응찰)

90,000 KRW

작가 소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구(聖九), 호는 구룡산인(九龍山人)·영운(穎雲)·향석(香石). 특진관(特進官)김흥규(金興圭)와 대원군의 외손녀인 임천 조씨(林川趙氏)의 3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참판 김정규(金貞圭)의 양자로 들어갔다.
양조부(養祖父)인 김병국(金炳國)이 영의정을 지내는 등 당시의 세력층인 안동김씨 문중을 배경으로 자라난 그는 22세에 세마(洗馬)를 시작으로 수원군수 및 내부(內部)의 지방국장, 동지돈녕원사(同知敦寧院事)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젊어서부터 서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고서(古書)와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1907년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본격적으로 서화에만 전념하였다.
1920년부터 약 1년간 이도영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이후 안중식과 조석진 등과도 교류하며 폭넓은 회화수련을 하였다.
1926년에는 내한한 중국인 서화가 방명(方洺)으로부터 서화를 배웠고 그를 통해 오창석(呉昌碩)의 신문인화풍과 해상화풍(海上畵風)을 비롯한 근대 중국화를 익혔다.
1949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서예부 심사위원과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의 명예회장과 한국서예가협회의 고문을 역임하였다. 글씨는 안진경체(顔眞卿體)의 해서와 한예(漢隷)에 바탕을 둔 예서 및 고격한 행서를 주로 썼다. 그림은 매·란·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와 수선화·모란·등꽃·연꽃·장미 등의 문인화(文人畵)를 즐겨 그렸다. 문인화 수법은 근대 중국 문인화의 거장인 오창석(吳昌碩)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묵란(墨蘭)과 묵죽(墨竹)에서는 민영익(閔泳翊)의 필법과 감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만년에 이르러 많이 그렸던 꽃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풍부한 색채구사와 전통적 품격의 필치는 그의 독자적인 수법이다.
병석에 눕기 전까지 정력적인 서화활동을 하였으며 병석에서도 윤대비(尹大妃)의 국상을 지켜 탈상(脫喪)할 때까지 상복을 입고 지냈다. 조선조의 마지막 문인화가라는 칭호를 들었다.
1956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회고전이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