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潤齋 李圭鈺

Lee GyuOk

  • 류연도

柳燕圖

Willow and Swallow

지본채색
Ink and Color on Paper

46.5×64㎝

우측 상단에 낙관

배접

추정가

  • KRW  200,000 ~ 500,000

응찰현황

* 마감시간 : 06. 25 - 02:55:00(PM)

남은시간

시작가

100,000 KRW

응찰단위

20,000 KRW

낙찰가 (총1회 응찰)

100,000 KRW

작가 소개

이규옥(李圭鈺)[1916~1999]은 1916년 경상남도 진양[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1940년 김은호(金殷鎬)에게 배운 뒤 1941년 일본 도쿄[東京]의 일본미술학원을 3년 수료하였고, 1943년 조선미술원에 입학하였다. 1939년 후소회 회원전에 출품하였다. 8·15 광복 후 서울 중동중학교·배재고등학교·수송전기공업학교 등에서
재직하였으며, 6·25 전쟁으로 부산에 피난 온 후 해동중학교·경남중학교에 재직하는 등 21년 간 미술 교사로 일하다가, 1969년 이후 동아대학교 미술과 교수를 지냈다.
동시에 이규옥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병행하였는데,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조선 미술 전람회에 7회나 입선을 하였고, 1971년 3월, 1972년 5월, 1973년 11월에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모두 1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1968년에는 동아 국제 미술전, 1973년에는 한일 문화 협회전, 1975에는 문화진흥원 초대전에 초대되어 작품을 출품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진주 예술제에 심사 위원으로, 경상남도전과 부산시전에 운영 위원 및 심사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규옥의 붓 터치는 대담하면서도 강렬하고 일필휘지로 거침이 없었다. 먹을 잔뜩 머금은 몰골풍의 그림으로, 채묵 모란이나 시대상을 보이는 인물화를 그렸다. 모란·산수·인물 등의 여러 화과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솜씨를 보여 주던 이규옥은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청초 이석우(李錫雨)와 함께 부산 화랑의 자존심으로 불렸다.
2011년 유작전을 개최한 부산 미광 화랑의 김기봉은 “30년 전에 윤재의 그림에 감동받아 지인을 통해 그의 그림을 받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뜻밖에도 윤재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그림을 공짜로 그려 주었다. 생활이 어려워 팔았다가 1년 전 판 가격의 2배를 주고 다시 샀다. 윤재와의 인연은 그러했다. 그 인연으로 이번에 유작전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기봉이 소장하고 있는 이규옥의 작품과 개인 소장가의 도움을 받아 22점으로 전시를 마련했다고 유작전의 소회를 밝히기도 하였다. 그런 사연 때문인지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이 생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장면의 「고진감래」라는 작품이 눈에 띤다. 여인의 옆에는 개 한 마리가 졸졸 따라가고 있고, 등에 업힌 아이는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목을 빼고 세상을 쳐다보고 있다. 여인의 치마선이나 여인이 이고 있는 광주리의 묘사에서 붓 터치의 대담함과 강렬함이 느껴지고 있다.
또 다른 작품인 「가족」에는 이삿짐을 잔뜩 실은 손수레를 앞에서는 아버지가 끌고, 뒤에서는 어머니와 아이들이 밀고 있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규옥 특유의 붓 터치에서 오는 생동감과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또 「부부」라는 작품은 짐을 가득 담은 지게를 지고 있는 남편과 그 옆에는 물동이를 인 아내의 모습이 정겹게 그려져 있다. 나무 사이로 태양이 행복한 부부를 비추고 있다. 남아적인 호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민들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부귀, 안락 등을 상징하는 전통 화훼화에 능통했던 한국화가 이규옥은 1999년 3월 2일 오랫동안 몸담았던 부산의 동아대학교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 작품으로 「조춘(早春)」[1972]·「고진감래」[1974]·「모란」[ 1978] 등이 있다.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2011년 3월 21일부터 4월 5일까지 부산 미광 화랑에서 유작전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