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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齋 徐丙五

Seo ByungOh

  • 휘호('임심리박')

揮毫('臨深履薄')

Calligraphy('Im-Sim-Li-Bak')

지본묵서
Ink on Paper

30×119.5㎝

좌측 하단에 낙관

액자

추정가

  • KRW  500,000 ~ 1,000,000

응찰현황

* 마감시간 : 06. 25 - 03:30:00(PM)

남은시간

시작가

300,000 KRW

응찰단위

30,000 KRW

낙찰가 (총1회 응찰)

300,000 KRW

작품 상세 설명

臨深履薄 임심리박

깊은 곳에 임하 듯하며 얇은 데를 밟듯이 세심히 주의(注意)하여야 함.

작가 소개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석재(石齋). 영남출신으로 일찍이 군수를 지냈다. 1901년을 전후하여 중국 상해(上海)로 가서 그때 그곳에 망명중이던 민영익(閔泳翊)과 친밀히 교유하면서 그의 소개로 당시 상해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중국인 서화가 포화(蒲華)·오창석(吳昌碩) 등과 가까이 접촉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09년도 상해와 일본을 여행하였고,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특히 포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그의 문인화법의 영향을 받은 문기(文氣) 짙은 묵죽(墨竹) 등 사군자를 그리게 되었다. 글씨는 매우 격조 있는 행서(行書)를 남겼다.
대구에 살면서 영남일원의 대표적 서화가로 최대의 명성을 누렸다. 1922년 대구에서 교남서화연구회(嶠南書畫硏究會)를 발족시켜 회장이 된 뒤, 서화연구생들을 지도하였다. 서동균(徐東均)과 성재휴(成在烋)가 그 시기의 그의 제자이다.
1922년부터 서울에서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鮮展)가 열리게 되자 박영효(朴泳孝)·정대유(丁大有)·김돈희(金敦熙)·김규진(金圭鎭) 등과 더불어 ‘서(書)와 사군자’ 부심사위원을 여러번 역임하였으나 한번도 작품을 출품하지는 않았다.